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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측정 및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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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이론] 평론의 대상
작성자 : Edu연구소2   조회수 : 425

 

평론의 대상

 

평론의 대상은 구체적인 사태다. 역사, 문헌, 인물, 자료, 작품, 프로그램, 사회운동, 지역사회서비스, 국가정책, 사건, 활동, 사물, 공간 등 그 대상은 동서고금에 널려 있다. 어느 것을 택하든 간에 복합성을 내포한다. 그 가운데 아직까지 숨겨져 충분하게 주목하지 못한 교육 고유의 면모와 사례를 분별하고, 조명하고, 안내하는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의 선택은 평론가의 몫이지만, 익숙한 현상임에도 알고 보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대상이 이상적이다. 이를 상기시키는 방편으로 논자는 그 구체적인 대상을 다음에 생각나는 대로 예시해 보겠다.

 학교체제의 등장과 더불어 교육은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철저하게 왜곡되고 감퇴되어 왔다.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진행되어 왔고 지금도 학교 밖에서 진행되고 있는 무수한 교육의 사례들이 평론에 오를 수 있다. 갈등이 불가피한 관계로 묘사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이루어진 교류교육의 사례,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교육적 교섭의 양태, 바쁜 농사철임에도 마을 사람들이 공회당에 모여 야학하는 지역공동체의 사례, 기업체에서 노사 간에 교육적인 대화를 통해서 갈등을 해소한 사례, 인터넷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숱한 교육적 활동의 양태, 한 사람이 여러 생활공간을 연계시켜 교육적 삶을 영위하는 사례 등은 교육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과 관심을 학교 이외의 생활공간에까지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교육적 인간의 경우도 평론의 대상이다. 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어 놓는 것은 권력이나 부나 인기를 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깨우쳐 주는 교육적 인간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교육을 교육답게 하는 데 모범적인 족적을 남긴 인물의 이야기,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은 채 교육을 위해 일하는 고결한 인물의 이야기, 가난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해서 장인의 위치에 이른 어느 자수성가한 직능인의 이야기 등이 뭇사람들에게 칭송되어야 할 교육적인 인물들이다.

 교육적인 활동의 경우도 평론의 대상이다. 누구나 선진과 후진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관계맺음에 인색하다. 역사적으로 교육요청(청상구와 청하화)이 이루어진 사례에 대한 이야기, 그렇게 성립된 교육적 관계나 교섭이 별개의 이유로 중단되거나 파기된 이야기, 정상적인 교육적 교섭의 결과로 그 반전이 이루어진 이야기가 흥미와 대상이 될 것이다. 서두르거나 속도를 숭배하지 않고 꾸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교육적 시숙의 과정을 밝힌 이야기 등은 교육활동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처럼 끈질긴 경과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줄 것이다.

 동서고금에는 고전이라고 할 만한 문헌이 있다. 교육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 길다. 그 가운데 아직까지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묻혀 있는 문헌들을 발굴하여 재조명하는 평론도 필요하다. 그 외에도 자서전, 소설, 영화 등에서 교육적인 흔적과 요소를 뽑아내서 재해석하는 작업도 교육평론가가 할 일이다. 교육적인 삶으로 어제까지 칭송되어 왔지만, 기실 특정한 정파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거나 고압제의 역사에 불과한 사실들도 노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평가는 이와 관련해서 정부의 교육부나 교육정책이라는 용어를 해체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교육부라는 진정 교육을 돕는 국가기구인가? 정책입안자들과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교육관은 무엇인가? 교육혁신을 내세우는데 교육은 혁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그 이면의 가정, 허위의식, 과장과 선전, 의도되지 않은 부작용은 어떤 것인가? 이들은 어떤 이유로 오로지 학교체제를 옹호하거나 미화하는 편에 서는가? 이에 대한 답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 교육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실상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 관련해서 학교는 과대하게 포장된 공간이다. 학교체제에 내포된 비교육적 사태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그 안의 교육외재와 교육내재를 구분하고, 전자를 후자로 치장해서 교육을 왜곡시키거나, 외재의 잘못을 내재의 잘못으로 치부하거나, 그럼으로써 정작 내재를 은폐하는 부분 등을 비판할 수 있다. 학교의 일제수업에서 교육의 내재적 열정을 억압하고 외재적 보상에 의존하는 아이러니컬한 사태를 조명할 수도 있겠다. 학교와 교육을 실현하려고 할 때 교사들이 당면하는 애로사항을 자세히 분석할 수도 있다. 노력하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는 여건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련을 딛고 열정을 쏟아 성공한 사례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좋은 평론인가? 이 질문은 본 절의 서두에 밝힌 평론의 목적과 결부되어 있다. 그 목적은 독자가 일상에서 널리 체험하지만 간과한 사태에 글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다. 평론은 습관에 익숙한 독자에게 얼른 보기에 교육과 무관한 것을 교육의 맥락과 의미로 끌어들이는 한편, 이로부터 새로운 눈으로 놀라움과 감명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독자가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느낌표로 받아들인다면, 그 평론은 성공작이다. 그런 평론을 묶어서 단행본으로 출간한다면 현재의 대중들과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의 교육적 삶을 향도하는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평론을 오직 전문가의 독점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넓은 의미로 말이나 글로 교육에 대한 평을 한다면 어느 것이나 교육평론이라고 보면, 그 타당성이나 전문성에 구애될 필요 없이 누구라도 자신의 관점과 평가를 말이나 글로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과 가치는 숨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좋다. 교육평론의 활성화란 바로 그런 사태를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평론이나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우열이 판가름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장상호, 2020, 735-738).

 

창상호(2020). 교육학의 재건. 교육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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