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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 및 교육사] 칼 같았던 경건주의자 칸트(Immanuel Kant)
작성자 : edulab1( )   조회수 : 908

칼 같았던 경건주의자 칸트

 

여행은 자유다는 광고 카피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여행은 자유의 한계를 넘어 방종에 가깝다. 누구에게 질세라 여행을 떠난다. 혼자서라도 여행 보따리를 꾸린다. 못 가면 마음의 병까지 얻는다. 묻지마 여행시대임에 틀림없다. TV를 켜면 여행을 소재로 한 예능프로그램이 넘친다. 여행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실재를 확인하는 아하를 경험하게 한다. 여행을 통해 얻는 이점은 예능프로그램 수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요즘 같은 COVID19 상황에서의 여행은 언감생심이다. 계몽의 시대 18세기에도 이런 상황은 아니었을 것인데 평생 여행이라고는 단 한 번도 안한 철학자가 여기 있다. 그는 동프로이센의 조그만 도시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의 칼리니그라드)의 한 경건한 개신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여덟 한 해 동안 독신자로 거주이전 한 번 없이 그곳에서 살다 죽음보다 자신이 죽을 시간을 먼저 알리고 “Es ist gut(좋았어)” 마지막 이 말을 남기고 경건하게 행복하게 죽었다. 그는 바로 프랑스 혁명(1789)의 이론적 배경이 된 계몽사상의 계몽의 의미를 제대로 정의(미성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한 계몽사상의 지속성을 강조한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칸트의 사상은 몰라도 칸트의 산책 시간이 그 마을의 표준시였다는 사실은 다 안다. 칸트는 시간을 잘게잘게 썰어 사용했다. 시작과 끝 시간은 매우 정확했다. 여행을 싫어한 이유도 아마 외부의 자극에 눈을 팔다보면 시간에 끌려가야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사 가이드의 재촉에서 벗어나 자신이 시간의 주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가 본적이 없는 칸트는 의외로 박학다식했다. 그 이유는 엄청난 독서광이었던 칸트는 종종 쾨니히스베르크의 사교계를 드나들면서 여행가들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를 자신의 상상력과 논리의 정교함으로 다시 풀어 써 세상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듯 말하고 행동했다.

칸트의 일상은 논리정연함 그 자체였다. 시쳇말로 일상이 늘 칼 같았다. 칼 같이 일어나고 칼 같이 밥 먹고 강의하고 책 읽고 그리고 칼 같이 같은 시간에 자고. 칸트의 군인 출신 하인 람페도 주인의 숨 쉴 틈 없는 꽉 짜여진 일과에 견딜 수 없어 늘 술에 찌들어 생활했다. 칸트는 제법 오래 산 철학자이다. 평소 산책 외 별 다른 건강관리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몸에서 체액이 빠져나가는 행동을 삼갔다. 조급해 하지 않고 세상을 자신의 시간으로 조율하며 조용히 차분히 그리고 경건하게 살았다. 다음은 그의 저서 실천이성비판의 한 구절이다. ‘나의 마음을 채우고 내가 그것에 대해 더 자주 더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늘 새로운 경외심과 존경심을 더해주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 속의 도덕법칙’, 이것은 칸트의 묘비명이기도 하다.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 속의 도덕법칙이 왜 존재하는지 이유를 묻지 말아야 한다. 하늘의 별이 왜 빛나는지는 우주를 창조한 사람만이 안다. 신이 창조한 우주의 것들은 왜 있는지 인간은 이유를 댈 수 없다. 무조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을 믿으니까. 도덕법칙 역시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도덕법칙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칸트의 윤리학을 의무론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라.” 이 명령에 어떤 조건도 이유도 달아서는 안 된다. 무조건 따라야 한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된다고 해도. “네 의지의 격률(나의 준칙)이 언제 어디서나 보편적 입법(타인의 준칙)의 원리에 타당하도록 행위하라.” 나의 준칙과 타인의 준칙이 일치하는 세상이 가장 좋은 왕국이 아닐까. 실천이성의 명령은 무조건 명령, 즉 정언명령이다. “봉사하라. 기부하라. 타인에게 선행을 베풀라.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라. 공부하라. 애국하라. 질서를 지켜라. 아이를 사랑하라. 친절하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마지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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