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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 및 교육사] 왕따, 스피노자
작성자 : Edu연구소1   조회수 : 518

왕따, 스피노자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 1632~1677)하면 떠오르는 말, 왕따. 그는 요즘 말하는 비자발적 왕따가 아닌 자발적 왕따였다. 그는 왕따를 즐겼다. 비자발적 왕따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하는 생사여탈권까지 가졌다. 스피노자는 왕따의 처참한 최후를 알면서도 왕따의 고통을 감수하고 승화하여 왕따의 상황을 자신의 쾌락상태로 만드는 그야말로 희한한 철학자였다.

스피노자는 세상이 먼저 알아 준 천재였다. 요즘 말하는 축구 천재, 야구 천재 스포츠계의 천재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승승장구하던 종교계의 유망주였다. 그런데 그가 하루아침에 종목을 유일신에서 범신론으로 바꿔버렸다. 그를 스카웃하려던 에이전트들은 당황했다. 그래서 그를 그들의 안중에서 지웠다. 스피노자는 반론하지 않았다. 스스로 주종목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종목으로 바꾼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도 요즘처럼 대리운전, 잡부 등 살기 위해 아등바등 열다섯 학생 때 어깨 넘어 배운 렌즈 가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옛 동료들의 도움은 일체 거절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으니 타인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는 없었다.

주종목을 바꾼 결정적인 생각은 이 세상 자체가 이성이고 정신이며 신이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세계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이단이었다.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따돌림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질서(일진들의 행동 규범)를 흔드는 것은 그들이 설 자리를 위협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를 왕따로 만들어 그들 음해하고 구실을 만들어 조직(학급)에서 파문했다. 스피노자는 그렇게 성경절대시대에 스러진 합리론자였다. 감성적인 일진들과 이성적인 왕따. 즉 스피노자의 싸움에서 스피노자 왕따는 그들과 상대도 해보지 못하고 그들의 한방에 자빠졌다. 일진들만의 세계는 일진들만이 우상의 대상이다. 왕따는 그 사실을 모른다. ‘학급의 모든 아이들이 우상이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왕따는 일진들에게 맞아도 싸다. 왕따는 전학을 결심했다. 후에 일진들의 세가 누그러졌을 때 다시 컴백홈하라는 소식에 그는 또 침묵했다. 그리고 열심히 렌즈를 갈았다. 침묵은 더 센 욕설로 되돌아왔다. 욕도 먹고 렌즈의 미세 먼지를 마신 탓으로 마흔여섯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스피노자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그를 보면 영락없이 왕따의 자살이 오버랩 된다.

범신론적 사고, 특히 기독교 교의에는 언감생심이다. 21세게 AI시대엔 이런 생각도 꽤 매력적이다. 고립, 고집, 외골수, 신경증,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은 왕따의 다른 말쯤으로 여긴다. 이젠 왕따 너가 문제야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였어로의 문제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진들의 이름은 몰라도 왕따 스피노자의 이름은 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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