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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학] 사회 문제로서의 교육 불평등
작성자 : Edu연구소1   조회수 : 1552

사회 문제로서의 교육 불평등

 

 사회적 계층이 다른 어린이들 사이의 교육불평등은 제2차 세계대전 전부터 영국에서 주요한 정치적 관심사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여러 보고서들은 1944년의 교육법을 이끌면서 이러한 논의들을 말했다. 이러한 법은 사회적 계층 사이에 교육적 평등을 가져오기 위한 정책 개발의 이정표였다. 교육불평등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절정에 도달하고 있다. 그때에 특히 성별사이, 그리고 다수와 소수의 인종집단들 사이에서처럼 다른 종류의 불평등이 국가적으로나 지역 수준에서 정치적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더 최근에, 대처리즘의 영향 아래, 정부정책 안에 있는 논제로서의 교육불평등에 대한 특징은 축소되어 왔고, 1988년의 교육 법과 이후의 법규에 명시되어졌다. 그러나 교육 불평등은 정치적 정당들, 흥미 집단 그리고 지역 당국들의 의제로부터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불평등은 또한 교육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회학적 연구들의 중심 초점이 되었다. 초기 연구는 자유로운 사회적 지위 체계(free place system)의 작용 속에서 사회계층 불평등을 다루었다. 1944년 후에 그 일은 새로운 3부로 나누어진 체계가 교육불평등을 감소시키는 정도를 연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는 정부정책을 만드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 Floud, Halsey, Douglas 와 그 외 다른 사람들의 연구는 국가 정책으로서 종합성을 세우기 위한 방법을 용이하게 하였다. 과거 20년 동안에 정부정책 입안 속의 교육불평등 문제가 축소되는 고비는 사회학적 연구나 다른 연구의 영향 속에서 쇠락을 함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불평등은 아직도 많은 교육 연구자들에 있어서 주요 관심사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은 성과 인종 불평등을 두드러지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제 2차 세계대전 이래로 영국에서 생산했던 교육 불평등에 대한 연구 중에서 의미있는 부분을 살릴 것이다. 우리의 특별한 초점은 학교의 내부 조직과 기능 속에 있는 불평등과 관련된 연구에 존재할 것이다. 목적은 어떤 결론들이 이 연구를 기초로 하여 도달될 수 있을까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지향이 필히 방법론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교육 불평등에 대하여 만들어진 주장들의 다양성을 살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지 속에서 제공된 증거가 설득력 있는지를 물을 것이다.

 

 우리의 기획을 개념화 시키는 한 방법이 반성성(reflexivity) 속에 있는 훈련으로서 존재한다. 반성성은 사회의 연구자들이 연구하는 세계 속의 필수적 부분이다. 이것은 몇몇 양상을 갖는다.

 

 인식론적 용어 속에서, 그들의 문제들을 명료하게 말하는 데에서, 그들의 방법을 고안해내는 데에서, 그들의 자료와 발견들을 설명하는 데에서, 연구자들은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특별한 문화적 자원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로, 그들의 결론은 자원의 제한점을 반영한 것이다. 게다가 반성성은 연구자들의 방향성이 그들의 사회-역사적 위치들에 의하여, 특히 이러한 위치들이 그들에게 유도하는 가치와 흥미에 의하여 형성될 것을 함의한다.

 

 반성성의 개념은 지식 생산이 자료 수집을 위하여 사회 속에서의 참여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참여는, 바람직하든 바람직하지 못하든, 연구된 사람과 연구자에게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참여이다. 마찬가지로, 지식의 전달은 결과를 갖는다. 연구발견의 출판은 정치적이고 실제적인 결정이 만들어지는 기류를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한 종류의 활동을 자극하기까지 한다. 이번 방법에서 그리고 다른 방법에서도 연구는 그것이 조사한 현상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미로 반성성은 연구 중에 피할 수 없다. 연구와 그것이 연구한 세계 사이의 상호 관계에 대한 연구자의 인식 수준을 참조하고 있는, 반성성의 의미에는 부가적인 구성요소가 있다. 연구는 그것의 환경과 더불어 그것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기-의식과 자기-지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에게는 사회학적 연구를 위하여 사회학적 주장의 반성적 적용이 그들의 평가 속에서 탐험되고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 같다.

 

  사회 해석주의와 사회문제들

 

 Floud, Halsey 그리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사회과학적 방향과 사회학의 다른 분야와의 현실적 연결고리를 강조하면서 교육의 사회학과 교육적 사회학을 구분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신 교육 사회학의 중심에는, 정책입안자나 변호사들의 협의사항으로부터 단순히 그들을 가져오는 것보다는, 차라리 연구문제를 만드는데 강조점이 있다. 게다가 이러한 신 사회학은 상징적 상호주의와 사회적 현상학과 같은, 지식의 사회학 속에 있는 이론적 사상들을 이끌면서 급진적 태도를 채택한다.

 

 그 때 이후로 사회 해석주의는 교육의 사회학 안에서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 접근법의 발달은 다른 영역에서 다소 벗어난 형태를 갖는다. 사회-문제 이론의 견지에서, 신 교육 사회학자와 계승자들은 구 사회학자들 처럼 사회 해석주의적 접근보다 오히려 틀림없는 사회적 인과관계를 채택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그들이 문제의 본질과 범위를 확인하고 그것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것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계획된 정책의 성공을 평가하는 것과 주로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사회해석주의자 접근은 이들이 문제로서 인식되고 다루어져 온 정치적 활동에 대한 관심사를 향하여 의심스러운 상황으로부터 분명하게 하는 이동을 포함한다. 이런 방법으로, 사회적 문제들은 정치적 투쟁 속에 통합된 명확한 절차에 의하여 생산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그 투쟁 속에는 사회집단들이 우선 그들의 환경 속의 몇몇 양상을 문제로서 확인하고 치료를 요구함으로써, 그런 다음 그들의 정의를 얻기 위해 정치적 활동에 종사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회 해석주의는 교육의 사회학 속에서 지배했던 교육 불평등에 대하여 아주 다른 전망을 제공한다.

 

 사회 문제 이론이 개발되었을 때, 사회해석주의는 교육 불평등에 대한 연구에서, 이 분야에 있는 연구의 반성적 분석을 촉진한다. 물론 교육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불평등이 심리학적이나 생물학적 요소의 결과가 아닌 사회적 산물임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사회의 각 성원들 쪽으로서는 그것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다루어 왔다. 대조적으로, 완전한 사회해석주의자 견해는 교육 불평등이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사회 속에 있는 사회문제로서만 구성되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적으로 사회 조직의 형태를 가져온 특별한 문맥 속에서 작용하고, 특별하게 수사된 전략을 전개하는 강력한 집단들과 개인의 연구 속에서 그리고 연구를 통하여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영국에서 사회적 문제로서 교육 볼평등의 존재를 다루기 위하여, 사회적 재검토에 열려져야만 하는 가정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함의된다. 해석주의자들에 있어서 교육적 불평등은 그것을 구성했고, 문제로서 인식했던 그것을 얻기 위해 정치적 동원에 종사했던 과거 사람들의 활동 때문에 지금 사회적 문제를 구성한다. 많은 교육연구자들을 포함하여 정치적 의제로 그것을 유지하려는 현대인들의 연구 결과로서.

 

  사회문제로서 교육 불평등에 대한 사회 역사적 구조

 

 서구사회에 교육 뿐 아니라 다른 형태의 불평등은 변화되어야만 하는 사회적 문제로서 넓게 간주되는 때가 있었다. 권력 속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아니고 더 낮은 지위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조차도.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재능에 따라 사회적 질서 속에서 일어날 기회를 즐겨야만 한다는 사상의 광범위한 확산 결과로서, 이것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7C 이후부터였다. 이러한 변화는 특별히 상업적이고, 도시 중류 계급의 상승과 연합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뒤에 후원했던 산업적 정치적 개혁에 의하여 촉진되었다.

 

 교육불평등은 비교적 최근에 사회적 문제로 부상된 것 같다. 19세기 영국에서조차도. 계급 구조는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여전히 간주되었다. 사회적 이동이 일어나는 것은 그들 스스로를 개선하는개인들로서 간주되었다.: , 그것은 일반적으로 공공정책의 목표가 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사회적 계급에 따라 다른 종류의 교육을 요구한다고 믿어졌다. 19C 초기에 노동계급은 전혀 어떤 형식 교육도 필요하지 않고, 그들에게 그것을 주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여전히 가정되었다. 국가가 보통 초등 교육을 제공하는데 직접적 책임을 갖기까지는. 20세기가 시작할 때까지조차도 중등교육을 받는 것이 노동계급에 매우 제한되었고 이것은 교육 불평등 반대운동에 대한 주요 논제가 되었다.

 

 그러나 교육불평등 문제의 뿌리는 19C 보다 훨씬 더 멀리 뻗어 있다. 그것과 연합된 두 개의 상황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진정으로 인간이 되는 것은 교육받는 것이었다. 르네상스의 영향은 여기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세속적인 학습과 지식의 범위에 대한 확장을 가지고. 그 개혁은 자국어 속에서 읽기쓰기를 훨씬 더 촉진시키고 그 때문에 지식에 대한 성직자의 통제를 훨씬 더 약화시키고 있다. 이것의 정점에 17C의 과학적 혁명은 과학적 방법의 수단에 의하여 학습할 준비가 된 사람에 의하여 습득할 수 있는 것으로서 지식을 표현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상들은 18C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결합되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사회 개혁의 중앙에 과학적 조사와 교육을 놓았다. 그리고 19C20C 초기에, 우리는 현대성의 첨단으로서 과학을 강조하는, 그 결과 과학과 공학교육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개인과 문화적 발달을 강조하는, 인간 지식의 진정한 원천으로 인간성을 보았던 사람들에 의하여 교육은 인간 생활의 필수 사항으로 다루어진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동등한 접근 요구가 자동적으로 따라왔다. 여러 종류의 평등주의 주장에 대한 점점 커져가는 영향을 주었다.

 

 사회문제로서 교육 불평등의 발생에 대한 무대를 세우는 두 번째 상황은 18.19 20세기를 거치면서 증가하고 있는 읽고 쓰고 셈하기의 역할이었다. 학교들은 읽고 쓰고 셈하기 기술의 제공자로서 중요하게 되었고 이들은 많은 새롭고 확장되고 있는 직업들 속에서 본질적인 것이다. 그리고 학교들은 여러 유형의 시험들을 위하여 여러 수준에서 지원자들을 준비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학교 교육은 직업 고용의 과정 속에서 역할이 증가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교육 불평등은 사회 불평등과 연결되었고 그리고 더 일찍 치료하는 것은 나중에 치료하는 것의 수단으로서 보여져 왔다.

 

 이것이 20세기에 교육 불평등에 대항한 운동이 일어났던 일반적 역사적 배경이다.

 

 연구와 교육 불평등의 개념화

 

 20세기 중반에 심리학자들 특히 지능검사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교육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품게 되었는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주요 명사들은 Thomson Cyriburt 이다. 이 연구의 중심에는 지능의 대부분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있다. , 사회 계층에 따라 평균 지능이 다르다. 그리하여 더 낮은 계층의 성원일수록 중류나 상류 계급의 성원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낮은 지능을 갖는다. 그러나 여러 개인적 사례에서 지능과 사회 계층 배경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연결이 인식된다. 그래서 지능 검사하기는 각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종류의 교육을 확인할 것을 요구받는다.

 

 부분적으로 이 연구의 결과가 특별한 능력을 보이는 노동계급 어린이들을 개별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재능을 개발할 기회를 그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더 많은 관심이 주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자유로운 사회적 지위를 증가시키고 초등학교에서 중등학교로 가는 기회의 길을 창조함으로써 성취되었다.

 

 중등교육에 유효한 수많은 자유로운 사회적 지위는 20세기 초반에 극적으로 증가되었다. 그들은 경쟁적인 시험, 교사들의 보고서, 지능검사결과의 기초 위에서 채워졌고, 그 방법은 지역 당국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달들이 중등학교에 있는 노동계급 학생들의 수를 증가시키는 동안 부적절한 것으로 자유체제에 대한 비평주의가 증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많은 사회적 지위(place)들이 노동계급 어린이들에 의해 점유되어졌고, 학문적으로 유능한 노동계급 어린이들의 수가 미리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LindsayGrayMoshinsky와 같은 사회학자들의 연구(work)는 이런 점에서 중요한 부분을 맡는다. 사회적 문제로서 중등교육에 접근하는데 사회 계급 불평등을 인식하기 위한 정치적 압력은 처음에 노동운동으로부터 왔다. 후에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한 정치적 기류의 변화의 결과로서 더 넓은 지지를 얻었다. 이러한 압력의 산물인 1944년 교육법은 모든 노동계급 어린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개방하기 위한 시도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교육 불평등의 문제의 발달에는 이러한 처음 단계의 몇몇 기본 가정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특히 지능이 대부분 유전적이라는 주장이 도전받게 되었다. 그리고 더 큰 강조점은 사회 환경의 결과에 놓여졌다. 심리학자들은 환경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 중등교육에 증가된 접근의 대책은 그들의 가정 배경의 결과를 반대하고 유능한 노동계급 어린이들의 지적 잠재력의 실현을 용이하게 하는 부분에서 동기화 되어졌다. 이러한 관점 속에 학문적으로 유능한 노동계급 어린이들의 수에 명확한 제한이 있다는 생각이 세워졌다. 이러한 생각은 Norwood 보고서에 간직되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세 유형의 어린이가 확인되었다. , 학문적, 공학적, 그리고 실용적인 것으로 속하게 되는 것, 이것은 3 부로 나누어진 체제가 널리 유행하는 결과를 가져온 1944년 법률의 이행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지능의 유전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가정 배경에서의 차이가 학업성취의 변화의 주요 요소로서 많은 해설가에 의하여 보여지게 되었다. 많은 연구의 결과 문화적 상실의 개념이 미국으로부터 수입되었고, 사회적 계층의 차별적인 학교 성취에 대한 설명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중류계급 어린이들과 비교하여 학교에서 노동계급 어린이들의 상대적 실패는 문화적으로 결핍된 가정 배경의 결과라는 입장으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설명되기 시작했다.

 

 학문적 능력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관점에서의 이러한 변화들은, 문화적으로 공평한 방법 속에서, 그것을 측정하기 위한 지능 검사들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종합적인 중등교육을 위한 압력을 이끌었다. 1(one)으로부터 이익을 볼 수 있는 문법학교 교육에 접근하는 많은 총명한 노동계급 어린이들을 부정하면서 11+에서 선택한 것은 너무 이르다는 주장이 있다. 1956년에 Floud, HalseyMartin은 노동계급 소년이 문법학교에 도착할 가능성은 1945년 이전보다 오늘날 두드러지게 더 크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게다가 Douglas의 연구는 측정된 능력이 동등해도 습득하고 있는 문법학교 사회적 지위에서는 사회계급 차이가 지속된다고 제시했다. 또한 이 시대에 상당한 정치적 의미는 전후 베이비 붐의 결과로서 중류계급배경 출신의 상당한 비율의 어린이들은 비선발 교육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에 있다. 이것의 결론은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중등 현대학교들이 GCE 시험에 그들의 참가를 이끌 상위에 배정된 학생들에게 학문적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11+가 비선발학교에 학문적으로 유능한 학생들을 인도했던 한계를 드러내는 결과를 갖는다. 또다른 결과는 종합화를 위하여 종합학교와 더불어 지역적 실험과 국가 수준에서 압력의 확장이었다.

 

 사회문제로서 교육 불평등의 발달 속에 첫 번째 단계부터 두 번째 단계까지의 변화가, 심리학부터 사회학까지 다른 훈련의 상대적 영향 속에 있는 변화와 일치했던 곳에, 그 문제에 대한 그 이후의 재개념화는 교육 사회학 자체의 내부 변화를 통하여 먼저 일어났다.

 

 한 초기 발달은 학교 안의 능력별 반편성(streaming)의 결과들에 초점이 있다. 11+에 대한 주요 비평은 그것이 역류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초등교육 고학년 안의 능력별 반편성을 격려하면서 그리고 그 때문에 훨씬 더 일찍 선발점을 밀면서. 똑같은 관심이 중등학교에서의 능력별 반편성에 주어져 왔다. 이러한 내부 선택이 가정배경 안의 차이의 결과를 강화할 뿐 아니라 이러한 과정들 자체가 학문적 성취안에서 사회적 계급차이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능력별 반편성은 가장 낮게 분류된 학생들의 학교를 향한 부정적 태도를 발생시키고, 그들의 학문적 수행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더 높은 비율의 노동계급 어린이들이 낮은 반에서 그들 자신을 발견한 이래 이것은 교육 성취속에서 사회적 계급 차이를 격화시켰다. 여기에서 교육적 불평등 설명에의 강조점은 학생들의 개인적 성격들과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교육체제 안에 있는 선발 과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종합학교의 장려 속으로 흘러들었다. 새로운 학교들은 집단을 가르치는 혼합된 능력에 기초하여 조직되어져야만 하는 것을 제시하면서.

 

 신 교육사회학의 출현은 이러한 발달에 아주 결정적이었다. 이것은 사회학자들 사이의 토론의 초점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지금 제공된 교육의 본질에, 학교 성취가 의존하는 학문적 능력의 종류에, 그리고 촉진된 학교 학습의 종류에 관심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종합교육을 위한 운동 안에서 문법학교 교육과정은 너무 좁아서 종종 퇴출당했다. 그리고 지능과 성취 시험들은 중류계급 선입관에 주제가 되기 때문에 비평받았다. 그러나 신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훨씬 더 급진적 노선을 추구했다. 우리가 더 일찍 말했던 이론상의 자원들에 뿐 아니라,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에 영향을 미쳤던 급진적 교육관들과 탈학교론자들의 주장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학교에서 제공된 교육의 전체 본질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것의 한 양상은 지식과 기술을 공급하는 혹은 적어도 유력한 사회집단의 문화로부터 나온 사람들에게 높은 지위를 일치시켰다는 주장이다. 다른 말로 하면, 바로 그 학교가 제공한 바로 그 지식이 더 넓은 사회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반영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교육은 하위집단에서 유력한 문화의 의무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여지게 되었다. 그에 앞서, 차별은 한편으로는 교육과 사회적 선택 사이에서, 적절한 능력에 근거한 선택과 태도 사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능력과 가까운 역할과 사회-계층 특성에 의한 선택에서 이끌어졌다. 지금, 학문적 능력의 전체 개념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보다 차라리 사회-역사적 구조로서 다루어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신 사회학은 또한 교육 사회학의 영역에 도전했다. 그리고 옛 사회학에서 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직접적 방식 속으로.

 

 신 교육 사회학은, 학생들의 개인적 사회적 특성들의 견지에서의 교육 불평등에 대한 설명부터, 교육 체제의 역할을 강조하는 설명까지, Hargreaves, Lacey 그리고 그 외 다른 사람에 의하여 시작된 변화를 완성했다. 앞으로 교육성취의 차이를 설명하는 어떤 시도라도 지식, 학습, 능력, 동기라고 간주된 교육체제의 정의를 주었던 배경에 지배받는다. 그 정의는 우세한 문화를 반영하고 노동계급 문화와 구별된다. 결과로서, 교육 사회학 안에 있는, 교육적 연구는 일반적으로 교육 체제 자체의 분석 연구의 초점을 향하여 가정배경의 결과와 관련된 것들로부터 먼저 변했다. 신 사회학자들을 위한 주요 문제는 교육으로 간주했던 것을 정의하기 위하여 그들의 능력 안에 있는 사회계층 사이의 힘의 불평등이었다. 그리고 추천된 혹은 적어도 함의된 치료는 전체로서 사회의 변화였다. 여기에서 나타난 것은, 대부분 노동 계급 어린이들을 차별대우하는 지식과 능력의 개념을 구성하는 교육 체제의 산물인 교육 불평등 문제의 개념이다.

 

 방법론적 변화가 이것과 밀접히 연관되었다. 또한 여기에 신 교육 사회학이 HargreavesLacey에 의하여 시작된 발달을 확장시켰다. 대부분 사회적 인류학의 영향 아래, 이러한 연구들은 특수학교 안에 있는 사회적 관계의 유형에 초점을 두면서 민족지적(ethnograph) 접근을 채택했다. Lacey는 소년문법학교를 연구했다. Lambart는 소녀문법학교를 조사했다. 그리고 Hargreaves는 소녀 중등 현대 학교를 연구했다. 특히 사회 측정법 질문지 자료인 양적 기술들을 고용하면서 이 연구자들은 교사들과 학생들과 더불어 관찰과 비공식 면접을 참여하는데 상당한 신뢰를 놓았다. 신 교육 사회학은 사실상 완전한 질적 방법을 향한 이러한 경향을 묘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현상론적이고 상직적인 상호작용하는 사람의 생각 아래, 학교에서 학급에 대한 상당한 양의 연구가 행해졌다. 이 연구들은 보통 한 학교 안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작은 집단의 교사들과 학생들에 아주 작게 초점을 맞추게 된다.

 

 많은 사회 문화 운동처럼, 신 교육 사회학이 경쟁하는 소수 그룹 속으로 붕괴시키기 쉬운 우월성을 성취한 적이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그에 앞서 경시되었던 학교와 수업과정들을 입증하는데 관심을 집중했다. 다른 사람들은 초기 연구와 아주 다른 방식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로서 교육체제의 작용 위 초점으로 돌아간다. 성장하는 막스주의 영향 아래, 그들은 더 넓은 사회의 구조적 세력들 특히 자본주의에 의하여 발생되어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우세(domination)를 보게 되었다. 막스의 이야기들은 사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데, 기능적으로 일치시키는 현대 사회에서 교육 체제의 전 구조와 내용을 표현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런 관점으로부터, 능력은 우세한 계급의 특성이나 관심을 위한,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능하는데 요구되는 능력을 위한 이념적 암호와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교육(schooling)의 사회 현실을 건설하는데 활동적 역할을 하고 있는 교사들과 학생들에 현상학적이고, 상호 작용적 강조와 명백하게 사이가 나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것은 마르크스 진영 안에서 조차 거절되었다. 학생과 교사들에 의한 어느 범위의 저항도 허락하는데 실패하였고, 그 때문에 변화의 어떤 가능성을 제외시켰다. 그러나 마르크스 체제는 이러한 비평들에 의하여 아직도 계속 기억된다.

 

 신 사회학은 교육 불평등 문제의 정의와 불평등이 어떻게 설명되는지에서 이전의 연구와 다르다. 앞에서 중류계급 어린이와 같은 수준의 성취에 대한 노동계급 어린이들의 실패는 대부분 그들의 문화배경의 양상의 측면에서 설명되어왔다. 지금 이 실패는 학교 체제의 생산으로서 재해석되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스스로 재생산했던 과정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이와 함께 노동계급 어린이들의 개념화에는 변화가 있었다. 그들의 문화적 배경의 희생자, 혹은 교육 체제의 특수조직양상의 희생자로부터 벗어나, 중압감에 고통받고 저항하는 것으로서 그들을 다루는 방향으로. 짧게 말하면, 교육 체제는 지금 자본주의 국가의 대리인으로서 관련된 그리고 희박하지만 직접적으로 교육과 사회의 불평등의 재생산에 관련된 것으로서 간주되었다.

 

 우리는 다른 기간의 교육 사회학에 대한 두 가지 고전적 연구들을 밀접히 연구함으로써 교육 불평등 문제의 구성에서의 좀더 최근의 이러한 변화들 약간을 설명할 수 있다.

 

  노동계급 희생자로부터 잠재적 혁명가로

 

 David Hargreaves의 책 중학교에서의 사회적 관계는 교육 불평등이 노동계급과 중류계급 가정에 의하여 제공된 학문적 성공이 다른 능력의 견지에서 최초로 보여졌을 때 쓰여졌다. Lacey의 책과 같이 Hargreaves의 책은 노동계급 어린이들에게 손해를 주는 중학교 조직의 양상에 강조점을 놓는 것으로 독특하다. 그들 중 누구도 가정배경의 사회적 계층 차이의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해도.

 

 Hargreaves1960년대 초기의 영국의 3부로 나뉘어진 교육체제 안에서, 학생들은 중등 현대학교에서 더 낮은 능력별 반 편성 안에서(그런데 그들은 노동 계층에 있었다.) 두 배의 오명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선발적 학교 사회적 지위(place)를 얻는데 실패했고, 중등현대학교에서 상층반 편성을 얻는데 실패했다. 교육체제가 근거를 둔 가치의 견지에서 그들의 지위는 낮다. , 그들은 높은 지위를 바랬지만 학교체제에 의하여 이것이 거부되었다. 비행이론에 따르면서, Hargreaves는 낮게 편성된 학생들의 반응은 학교가치를 뒤집는 하위() 문화를 형성하였다고 주장한다. -학교태도, 범죄행위, 그리고 학교 공부를 위한 동기 하락이 이것으로부터 따라와졌다.

 

 Hargreves 보고의 함의는 낮은 지능이나 혹은 문화적 배경의 부족에 의한 원인이 아닌, 학교의 사회적 조직에 의하여 원인이 된 중등학교의 낮은 반편성에 놓여진 노동계급 소년의 태도와 행동을 나타낸 것이다. 11+에 선택에서, 능력별 편성하기에서, 그리고 교실에서 교사에 의한 학문적 능력과 행동의 차별들에 의한 사회적 조직. 그에 의하면, 자기-존중감이 낮은 반편성에 놓여있는 것을 통하여 위협받기 때문에, 그 소년들은 학교의 거절의 정도에 비례하여 명성을 줄 수 있는 대안 체제를 찾을 것을 강요받는다. 그 때 학생들은 교육체제가 조직된 방법의 희생자로서 묘사된다. 이것은 교육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도덕적 재평가를 포함한다. 그것은 그 시대에 많은 중학교 교사들의 유력한 관점과 모순될 뿐만 아니라 더 초기의 보고들과 대비되는 것이다.

 

 Hargreaves의 보고는 후기의 많은 책과 유효하게 비교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아마도 사회학 안에 훨씬 더 많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10년 후 WillisHargreaves에 의하여 연구된 것들과 아주 비슷한 학생 집단에 초점을 둔다. 조사의 장소는 중등 현대 학교이다. 그런데 Harsgreaves의 사례보다 훨씬 더 많았다. 더 낮은 반의 중심부에 노동계층 소년들이 있다. 게다가 Willis가 기술한 소년들의 태도와 행동은 범죄소년에 대한 Hargreaves의 보고 속에서 기록된 그들과 매우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저자는 그들이 연구했던 소년들의 태도와 행동을 설명하는 방법 속에서,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그들의 평가 속에서 의미있게 다르다. 하나의 중요한 차이는 Willis가 주요 변인으로서 학생의 가정 배경을 가져온 것이다. Hargreaves는 학교 가치의 전환의 결과로서 더 낮은 반 속에서 그가 발견했던 반-학교 하위문화의 본질을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고, Willis는 그것을 노동계급문화의 표현이나 발달로서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낸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문화가 상실이나 손실의 원천으로서 더 이상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넓은 사회의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학교의 역할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포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Hargreaves는 실패에 대한 반응으로서 더 낮은 반 소년들의 반-학교 하위문화를 보는 곳에서, Willis에 있어서는 그것은 소년들을 통제하고, 그 중류계급 문화를 강요하고 자본주의 사회 속으로 그들을 합병하는 학교의 시도에 대한 반응이다.

 

 Willis의 연구 안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반항하고, 낮은 반, 노동계층 소년들의 태도와 행동에 대한 더 나아간 재평가이다. Hargreaves에 의하여 부정적으로 평가된 곳에서, Willis에서는 이들의 평가가 바뀐다. 그에게 있어서 반-문화는 학교 문화보다 우세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의 본질에 대한 진정한 이해인 통찰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반면, 학교 문화는 원래 불평등 사회를 보존하기 위하여 기능하는 특성이다. 유사하게 Hargreaves가 중학교의 조직적 양상에 대한 인과관계의 산물로서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을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Willis는 그들의 환경을 이해하고 그들의 활동을 결정하는데 훨씬 더 활동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소년들을 나타낸다. 참으로 순종하는 학생들인 'ear' oles', 그들의 행동은 결정된 인과관계로 다루어진다. 소년들은 그들을 통제하는 학교의 노력을 방해한다. 이러한 저항 속에 있는 자원으로서 노동계급 문화를 사용한다.

 

  신 교육사회학 후

 

 1970년대 후기와 1980년대에, 교육 사회학은 사회적 민주주의의 붕괴로서 참조되어진 배경에 대항하여 개발되었다. 우리가 더 일찍 말했듯이 국가 정부의 수준에서의 권리에 변화가 있었다. 교육 기준에 대한 관심사와 그리고 경제적 성장에 공헌하기 위한 교육의 실패로서 보여진 것을 향한 정치적 의제 속에. 게다가 교육의 사회학은 사선 그 자체였다. 교사교육을 불구로 만들고 기준들의 하락과 학교 안에 반 자본주의 이념의 전달로 결론지어지는 진보주의와 교육적 급진주의 주요 원천의 하나로서.

 

 동 시대에, 내부적으로, 하부과목은 학문세계 안에 커져가고 있는 여성 해방운동의 영향에 의하여 그리고 좌파정치의 주요 요소인, 타 문화와 반 인종차별 발생에 의하여 영향받기 시작했다. 관심이 백인 노동계급 소년들의 운명으로부터 소녀들과 소수민족의 교육적 경험과 미래로 옮겨졌다. 성 사이와 민족 인종 집단 사이의 교육 불평등은 지금 많은 연구를 위한 초점이 되었다. 소녀들의 능력은 특히 과학과 수학에서 학교와 교사들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과소평가 되었다고 주장되었다. 또한 어떤 과목에 대한 그들의 접근은 그들이 더 높은 교육을 계속 하거나 높은 수준의 학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과목을 잡지 않고, 대신에 결혼과 가정을 선택한다는 가설에 의하여 제한받아 왔다고 주장되었다. 게다가 학교 지식의 본질은 가부장이 지배하는 가정들을 반영한다고 주장되었다. 소녀들의 동기를 약화시키거나 그들과 성질이 다른 지식과 학습의 형태 속으로 그들을 사회화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게다가 학교들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전통적 개념을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심어주어, 그 때문에 가부장제도를 재생산 하는 제도로 많은 여성해방주의자들에 의하여 보여지게 되었다.

 

 비슷한 방법으로 소수 민족 학생들은 학교에서 상당한 차별로 고통받는다고 주장된다. , 교사들은 아프리카계 중남미 학생들은 높이 붕괴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반면, 언어문제로부터 고통받고 있고 그들을 불리하게 하는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아시아 어린이들을 보는 경향이 있다. , 아프리카계 중남미 학생들의 경우에 그것은 반-학교 하위문화의 개발로 이끈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의 교사들에 대한 적대심을 증가시키고 그들의 학문적 수행을 하락시킨다. 학교 안에 있는 흑인 학생들에 대한 중요한 차별은 교사에 의한 편견으로부터 일어나는 것 뿐 아니라 전체 사회의 기본적 인종주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으로서도 보여진다. 학교에서 가치있는 많은 것은 문화측면과 행동규범 모두 백인문화에 기초되어진다는 것이 제시된다. 이와 나란히 희생자 비난하기를 피하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이 당면하는 차별에 지각력 있고 활동적인 저항하기로서 흑인 학생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다.

 

 사회 계층에 대한 초기 연구와 더불어 이러한 연구는 정치적 중재를 요구하는 문제로서 교육적 불평등을 구성했다. 성과 인종의 불평등에 대한 명료한 진술은 신 사회학자들이 했던 것보다 덜 급진적 위치를 갖는다.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부적당한 접근과 부적당한 기회에 초점을 두면서. 그런데 그것은 학교에 의해서 제공받는다. 대부분 이것은 결과의 평등용어로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이상적 기회의 평등을 성취하는 것이 아닌 교육체제의 내적 비평을 구성했다. 그러나 훨씬 더 급진적 반응이 신 사회학에서 뿐 아니라 여성주의 안에서의 발달에 의하여 미국 내의 흑인 세력운동에 의하여 영향을 받아 그 시작하기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것은 개발된 이러한 분야들 속에 있는 작용으로서 더 중요하게 되었다.

 

 이들 후기 발달의 간단한 실례로써 우리는 Mary Fuller에 의한 어떤 영향력 있는 연구를 볼 것이다. 그녀의 논문 중 하나에서, Fuller1970년대 중반부터 많은 아프리카계 중남미 소녀들이 백인 노동자 계급 소녀들과 아프리카계 중남미 소년들보다 학교에서 더 잘 수행하고 있는 발견의 배경에 대해서 발표한다. 이것은 차별과 압박으로 가정된 유형들로부터 예언되는 것과 반대된다. Fuller는 흑인 여성들이 그들의 성의 기초 위에서 경시받지 않는다는 신념, 그리고 참으로 다른 여자들에 관하여 널리 보급되었던 신념에 공헌했다고 해석한다.

 

 Fuller는 흑인 소녀의 이중적 경시의 결과가 그녀가 연구했던 학문적으로 성공한 학생들 집단의 사례에서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녀들은 학교에서 잘 했다. Fuller는 능력별 반 편성이나 가정배경보다는 여성 차별과 인종 차별의 산물로서 그녀가 연구했던 소녀들에 의하여 형성된 구조를 본다. 그녀는 그들이 이 두 범주의 구성원으로 차별대우하는 사회에서 흑인이라는 의미와 여성이라는 의미를 깨닫는다고 보고한다. 그래서 그들은 가정 내의 허드렛 일과 개인적 자유의 수행의 견지에서 부모들이 소년과 소녀들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중적 기준들에 불평한다. 그들은 흑인 또래들의 성차별을 보고 노동시장에서 차별이 있음을 인식한다. Fuller에 따르면 학문적으로 성공하기 위하여 그들의 수행을 동기화 하는 것은 명백히 차별에 대한 이러한 지식이다. 소녀들은 세계와 그 안에 있는 그들 자신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에게 작용하는 압력에 저항한다.

 

  교육 불평등에 대한 사회학적 구성을 재검토 하기

 

 우리가 조사했던 세 가지 연구들을 뒤돌아보면 우리는 교육 불평등 문제를 형성하기 위해 사용된 전략 중에서 흥미있는 변화를 발견한다. 대부분 이것들은 진술된 장면들의 여러 양상에 대하여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도덕적 평가들의 다른 과제를 포함한다. 이와 함께 행위자에 대한 자유 지식 책임에 귀속시키기가 포함되었다.

 

 Hargreaves의 연구의 경우에 도덕적 가치는 교육 체제와 그것이 제공한 것에 배정받는다. 그러나 노동계급 어린이들의 학문적 실패는 불공정한 것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이것은 그것이 그들의 진정한 지능과 도덕적 성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동안 그들의 낮은 학문적 성취와 반사회적 행동이 대부분 교육체제의 선발절차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표현된다. 게다가 대부분 학생들은 그들 자신의 태도와 행동의 원인에 대해서 깨닫지 못한다. 책임은 교사와 학교에 놓여진다.

 

 그 상황은 Willis와 매우 다르다. 여기에서 도덕적 가치는 소년들에 배치된다. 그런데 학교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소년들은 교사를 포함하는 다른 사람들이 갖지 않은 지식을 가진 것으로 그 체재에 저항하는 활발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비록 그들이 그것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 지라도. 문제는 사회의 바로 그 구조에 놓여진다. 요구받는 것은 급격한 지식인들과 교사들이 자본주의를 노동계급이 전복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Fuller의 각본은 다르다. 더 많이 복잡하고 양가 감정이 있다.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은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것의 원천은 명료하게 지적되지 않는다. 그리고 Fuller의 설명은 Willis의 것과 같은 종류의 더 큰 사회의 철저한 거절에 기초를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들은 그들의 삶에 대한 책임을 이미 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녀는 차별에 대한 지식과 그것에 저항하는 활동적 역할을 그들에게 귀속시킨다.

 

 물론 이러한 세 가지 연구들은 가장 최신의 연구문헌에서 발견되어진 교육 불평등 문제의 수사된 설명에 대한 종합적인 그림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사용된 설명의 범위와 시간을 넘어 이들에 일어났던 변화들에 대한 어떤 의식을 준다. 요약한 형태로 우리는 아래의 사회 문제들과 같은 교육불평등 구조 속에 있는 주요 무대를 요약할 수 있다.

 

  처음에 교육 불평등을 구성하는 것은 노동계급이 학교에 접근하는데 대항하는 통상적이고 재 정적인 장애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자유로운 사회적 지위의 부적절한 규정과 모두를 위 한 중등교육 제공에 대한 실패로 나타난다. 이러한 요인들은 지적인 노동계급 어린이들이 직업 구조속에 일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비평을 받았다.

 

 후에, 관심이 교육체제 속에서 노동계급의 참여와 성공을 위한 문화적 장애물들에 초점을 맞 추게 되었다. 노동계급 어린이들의 지능지수 이하의 성적 얻기로 이끄는 것으로 믿어진, 초기 인지적 태도적 발달 위에는 그들의 가정배경의 효과가 있었다.

 

 거의 같은 시대에, 교육 체제 안에서 노동계급 성취에 대한 조직적 방해물 위에 강조점이 놓 여졌다. 너무 이른 한 점에서 다른 종류의 중등학교 선택하기는 노동계급 어린이들이 그들의 충 분한 잠재력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신 교육 사회학과 더불어 그 초점은 날카롭게 변했다. 교육은 현대화하고 계발적인 힘으로서 더이상 묘사되지 않는다. 문제의 부분 그 자체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유력한 문화에 대한 과제 를 포함하는 것으로 사회계급 구조를 재생산하는 기능으로서 보여졌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노동 계급 어린이에 대비하여 문화적 사회적 차별을 구성하는 것으로 다루어졌다. 비록 그것이 그들 의 부분에 저항을 발생시키게 되었다 할 지라도. 학교에 의하여 제공된 교육의 전체 본성은 의 문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때때로 유전적으로 이념적이고 압제적으로 보여졌다.

 

 마지막으로, 그 초점은 성 사이에서 인종적으로 민족적으로 정의된 집단들 사이에서 교육 불 평등으로 확장되었다. 소녀들과 소수민족 학생들의 교육 성공에 대한 그들의 정당한 몫이 부정 된다고, 구성된 학교지식과 학습의 본질은 그들을 차별한다고 주장한다.

 

 결 론

 

 이 장에서 우리는 교육의 사회학에 반영되는 전망을 제공하는 방법으로서 사회적 문제의 연구에 대한 사회해석주의적 접근을 사용했다. 이 영역 안의 많은 연구가 교육 불평등을 뿌리뽑기 위하여 정치적 압력과 밀접히 연합되었다. 게다가 불평등의 개념화, 그것을 나타내는 설명, 그리고 그것을 다루기 위해 추천된 정책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넓은 정치적 기류에서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급격히 변했다. 이러한 제시는 이 연구와 관련된 현상이 그것 중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연구자들이 그것을 정의하고 재정의 하면서, 교육 불평등의 문제를 구성하는데 자신들을 포함시킨다.

 

 교육 사회학에 대한 이러한 사회해석주의자 보고는 훨씬 더 중요한 것을 보여준다. 사회 해석주의는 신 교육 사회학 발달에서 주요 요소였다. 그러나 그것은 선택적으로 적용되었다. 신 사회학자들은 능력이나 지능에서의 차이의 존재, 노동계급 가정의 단정된 문화 손상, 학교에 의하여 촉진된 지식 유형의 가장된 우월성을 잊었다. 지능, 문화, 지식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의 문제이고, 교육 체제 안에서 널리 퍼진 강력한 집단의 정의라고 주장하면서. 어린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의 차이, 혹은 관련된 차이를 반영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사회적 현상의 특성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이들 현상의 특성은 무시되었다.

 

 좀더 최근의 경향성은 성과 민족에 관련한 교육불평등에서 작용한다. 소녀들과 소년들 사이에, 다른 민족 집단의 성원들 사이에, 능력이나 지도의 실제적 차이가 있을지 모르는 효과, 그리고 이것들이 차별적 교육 성취를 발생시키는 효과에 대한 주장은, 이러한 단정된 차이가 성 차별주의나 인종 차별 주의에 의하여 생산된 사회적 구조라는 기초 위에서 지배되었다. 그러나 가부장제도와 인종주의는 사회 구조로서 다루어지지 않고 세상에서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 사회적 힘으로 다루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택적 의심을 갖는다. , 세상의 어떤 양상은 사회적 구조로서 다루어진다. 그리고 완전히 현실적이지 않다.

 

 사회 해석주의의 이러한 선택적 적용은 결코 예외적이 아니다. 참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다른 연구에서 발견된다. WoolgarPawluch'존재론적 속이기'로서 그것을 참조했다. 이들 저자들은 해석자가 단순한 해석으로 사회 문제들을 종종 묘사하는 동안 그들은 모든 경우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채택된 접근법은 연구자의 가치에 의존했다.

 

 WoolgarPawluch가 지적하였듯이, 해석주의자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든 사회의 현상에 적용한다. 이런 관점으로부터 이 장에 있는 우리의 보고는 교육의 사회학에서 앞서서 보급한 사회 해석주의의 일방적 적용이 치료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사회 구조로서 교육 불평등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우리들은 전형적이지만 정당화되지 않도록 이 장면에 있는 분석의 기준틀 밖으로 떠나는 것을 강조했다.

 

 이 장에서 우리의 설명은 존재론적 속이기의 짐을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사회 문제에 대한 사회 해석주의자 분석은 그 문제들의 구조 속에 포함된 사회정치적이거나 추론적인 과정을 실현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대부분 사회 해석주의자 보고는 기술된 것을 구성하기에서 사회학자의 연구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충분히 일치하기 위하여, 사회 해석주의는 그것의 초점 안에 해석주의자 자신들의 연구를 포함해야만 한다.

 

 그러나 존재론적 속이기가 수용될 수 없다면 그리고 사회 해석주의의 회의적 함의에 대해 일치하는 적용이 무익하다면 무슨 결론이 끌어와질까? 우리가 믿기에 이러한 진퇴양난이 보여주는 것은 해석주의자 반성성의 핵심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ButtonSharrock이 명백하게 했듯이, 지식의 사회적 구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것이 참조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포함하는 것에 필수적이지 않다. 그러한 현상들이 비합법적임을 뜻하지 않는다. , 사회현상은 신중한 과정의 생산물이고 그들은 다르게 구성되어질 수 있고 구조의 과정은 전복될 수 있다는 함의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인간활동의 생산물이라는 사실은 결코 함의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회 해석주의는 원인이 되는 것과 그것에 접근하는 사회적 인과관계로부터 구성되는 것 사이의 구별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이에 따라 인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식 속에서 제작자만이 현실이라는 생각을 이어 받는다. 인간의 활동에 의하여 생산된 현상들은 그들을 생산하는 데 포함된 사람들의 의도와 바램 속에 따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해석주의는 그들의 연구가 그들이 작용하는 사회적 문맥에 의하여 형성된 방법 뿐 아니라 조사자들이 그들이 조사하는 현상을 구성한다는 사실로 우리의 관심을 향하게 한다. 또한 교육 불평등 연구는 대부분 반성적이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교육 불평등을 지시하고 설명하는 견해를 가지고 교육체제를 보았다. 이러한 불평등 유형과 관련된 방법에,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방법에 충분한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 그들 스스로는 사회적 산물이고, 이것의 사회적 적용이다. 이러한 영역에서의 조사는 그것이 존재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자각적으로 반성적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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