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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 및 교육사] 공자는 공자, 맹자는 맹자 그리고 나는 욜로족
작성자 : edulab1( )   조회수 : 649

공자는 공자, 맹자는 맹자 그리고 나는 욜로족

 

공자(기원전 551~기원전 479)의 본명은 공구다. 망치, 톱 같은 공구가 아니라 구멍 공(), 언덕 구(). 공자의 아버지는 조강지처와 아홉 명의 딸을 뒀다. 아버지 숙량흘은 공씨 집안의 대를 이으려는 심사로 64세에 20세도 안된 아주 젊은 그것도 세 번째 후처를 들여 끝내 아들을 보았다. 그가 공구다. 숙량흘은 이렇게 어렵게 공구를 얻었다. 공구의 어머니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매일 근처 니구산(尼丘山)에 올라 빌고 빌어 공구를 낳았다는 얘기가 있다. 공구의 나이 3세 때 기골장대(氣骨壯大, 체격이 좋고 늠름함) 했던 숙량흘이 죽자 청상과부(젊어서 남편을 잃은 여자)가 된 안징재는 공구의 장래를 위해 심혈을 쏟았다.

공구는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특히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주나라 관제와 제사의 예절에 관심을 가져 그 쪽 분야에서는 꽤 유명하게 되었다. 춘추(春秋)시대(기원전 770~기원전 221, 배경보다 능력이 우선시 되던 시대) 제사를 담당하던 사람을 유가(儒家, 제사 담당 관리)라고 불렀다. 공자의 학문을 유학, 즉 유가의 학문(예학)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가의 핵심은 인(, 분별적 사랑)과 예(, 예의, 즉 자신의 욕심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도덕성). 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추모(죽은 사람을 그리워함)하고 추모의 의식과 절차를 정성스럽게 하는 행위다. 제사는 그런 마음으로 모시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 제사 의식은 유학의 정신에 크게 어긋난 것이다. 공자는 그런 의식과 형식을 중요시했다.

공자의 사상에 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마음)를 토핑한 사람이 맹자(전국시대, 기원전 372추정~기원전 289년 추정). 그는 유학의 시조 공자(춘추시대, 기원전 551~기원전 479)가 태어난 곳에서 10(4) 쯤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나이로 따져보면 공자는 맹자 어머니의 부모 세대다. 맹자 어머니는 그녀의 부모님을 통해 공자의 명성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맹모가 아주 어렸을 때 공자를 만난 적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요즘의 거리 개념으로는 1리 정도도 되지 않지만 그때의 10리는 꽤 먼 거리라 소문만이라도 들었을 수도 있었다. 맹모삼천(孟母三遷,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함)의 교훈은 그때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공자에 대한 명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맹모삼천은 맹자 어머니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은 그녀만의 교육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같은 인물이 태어난 환경이라면 내 아들 맹자도 공자와 같은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맹모의 꿈은 아들의 워너비 컨퓨셔스((wanna be Confucius))’였다.

맹모의 교육관은 서양의 경험주의 교육철학과 통한다. 베이컨에서 시작해 듀이에게로 이어진 경험주의 교육철학에서는 경험 자체가 교육이다. 그들은 경험=교육=지식이라는 등식을 믿는다. 맹자의 어머니 역시 그랬다. 맹모는 아들이 경험하는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은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맹자에게 아무 말 없이 단기지교(斷機之敎, ‘베틀의 실을 자르다의 뜻으로 공부는 쉼없이 해야 완성된다는 의미로 쓰임)의 교훈을 준 여인이기도 하다. 맹모는 환경이 주는 자극(경험)이 곧 지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살았던 공동묘지 근처에서 맹자가 경험한 것은 상여꾼 흉내였다. 그것은 맹모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혜로운 여인은 화들짝 놀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시장 근처로 이사했지만 거기서도 원하는 교육성과를 내지 못하자 마지막으로 이사한 곳이 요즘으로 말하면 학교다. 드디어 공자의 어깨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 교육특구, 그들만의 메이저 리그전이 벌어지는 곳. 오늘날의 맹모의 꿈 워너비 강남’, ‘워너비 일류대의 구호가 난무하는 곳. 지금도 여전히 맹자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곳.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그들만의 방법은 꽤나 수구(守舊낡은 옛 것을 그대로 따름)적이다. ‘워너비 강남’, ‘워너비 일류대의 불패는 아직도 유효하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의 부모가 살아왔던 이성의 시대가 아니다. 거대 담론(집단의 성공스토리나 이념과 목표)의 시대를 지나 포스트 모던(post-modern)한 사회를 지향한다. 삶이 주는 문제는 수학 문제처럼 딱 떨어지는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 역시 개인마다 다르고 당연히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구한 답도 천차만별이다. 당시의 맹자라고 겪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극성에 맹자는 아무 스트레스도 없었을까? 당시는 그때의 사회문화적인 풍토가 있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 이웃에 공자가 살고 있다고 해서 워너비 컨퓨셔스라는 하나의 목표를 강요한다면 정치판의 용어를 빌리면 보수꼴통이다.

학의 다리를 잘라 오리의 다리에 붙일 필요는 없다. 학은 학대로 오리는 오리대로 멋이 있고 예쁘고 아름답다. 상대적 비교가 아니라 사물은 모두 나름의 절대평등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공자의 학문을 잘라 맹자의 학문에 붙일 수 없다. 공자는 공자 맹자는 맹자다. 넌 너고 난 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요즘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산다. 욜로(You Only Live Once, YOLO)(한 번뿐인 인생을 현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쓰자는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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