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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하는가?

인생관・세계관의 문제에서 우리는 가치의 문제와 신의 문제에까지 부딪히게 되었다. 그럼 신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종파의 신앙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순수 이론 혹은 사변으로서 인간은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사람은 매우 종교적이라 지구상의 대다수의 인간은 다 어떤 형태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러한 특정 종교가 아니다.

하느님의 계시 revelation 에 의한 종교를 다루는 교리신학에 대해서, 형이상학적 인식으로서 옛날부터 소위 「제 1 학」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자연신학 또는 이론 신학 retional thology 으로 불리운다. 자연에 대한 지식에서 추리해서 신에 대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계시 신학에 관해서는 한 예를 들자면 “대한 기독교 장로회”의 소위 “기장파” 신학과,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소위 “예장파” 신학이 쟁점이 있듯이 서로 다른 교리신학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다루기가 힘드나, 자연신학은 종교의 액면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존재를 자연적인 이성의 힘으로 캐내자는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문제 접근에 훨씬 장애가 적고, 종파적 노선을 마음대로 떠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의 한 분야로서 신 인식의 문제를 다루게 되는 것이다.

01
신의 존재는 증명될 수 있다.
신의 존재는 증명될 수 있다.

자연신학의 문제는 플라톤까지 올라가는 문제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근세 사상가들의 신에 대한 태도만 살펴보기로 한다. 그러나 근세사상에 가장 깊고 가장 오랜 자연신학적 영향을 끼친 사람은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였기 때문에 우선 대표적인 자연신학설을 성 토마스 St. Thomas 에서 먼저 찾아 보자. 1274년 49세로 승천한 이 천사적 박사는 분명히 기적에 가까운 해박한 저작을 남겼고, 그의 「신학대전」 Summa contra gentiles 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가톨릭 교회의 신학과 철학의 공식 표현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의 연설에도 인용될 만한 보편성이 있는 학설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카톨릭 교회의 성인들 중에서 오직 학문 때문에 성인 된 유일한 성인 saint 이다. 성 토마스는 신의 존재란 우리의 이성으로 증명 가능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 증명 방법은 “만일 이렇다면, 그럼 이렇다”(If-then)은 연역적인 추리였다. 신이란 직접 감각되지는 않는 것, 그것은 우리의 직관이나 통찰력으로도 안 보이는 것, 그러나 우리가 뚜렷이 알고 있는 사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그 확실성의 유추에서 끌어낸 결론도 또한 확실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래서 토마스는 다섯 가지 주장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변화와 인과와 우연의 완전도와 조화의 다섯 가지가 그것이다. 그는 요지부동의 사실을 먼저 내세우고, 그 다음은 또한 요지부동의 이론을 내새운다. 그 이론이란 우리가 무엇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① 우선 어떤 사실을 설명도 무엇도 용납되지 않는 기정사실로 인정해 버리는 것은 설명이 아니다. ② 또 그 일은 그전 일의 결과요, 그전 일은 또한 그 전전 일의 결과요 하는 식으로 무한한 후퇴를 하는 것도 아무런 설명이 안된다. ③ 이상 두 가지가 다 설명이 아니라면 결국 무엇인가 궁극의 존재가 있어야 이 뚜렷한 사실의 증명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설명이다.

1) 첫째로 변화의 이론을 살펴 보자 자연현상에서 변화만을 빼 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을 보나 만물은 변화하고 있다. 그러면 이 변화의 설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변화란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는 그냥 변화라는 사실 뿐인가? 그렇지 않으면 변화는 그전 변화의 결과요, 또 그전 그전 변화의 결과라는 식으로 한없이 후퇴만 하면 설명이 되는 것인가? 이상의 두 가지는 다 변화의 시초에는 반드시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는 그러나 남을 움직이는 자 Uumoved Mover, 다시 말해서 모든 변화의 시동자 Prime mover(Primis mover)가 있어야 변호가 생길 것이 아닌가? 이것을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고 그는 말한다.

2) 둘째로 인과의 이론이다. 세상만사가 다 인과관계의 지배를 받는다. A는 B의 원인, B는 C의 원인, 이래서 인과관계의 존재란 요지부동의 사실이다. 그러면 그 원인이란 무엇인가? 원인이란 설명불가능의 또는 설명이 필요치 않은 그 자체로서의 존재인가? 그렇지 않으면 원인은 그전의 결과, 그전의 결과는 또 그 그전의 원인이 낳은 결과, 마치 만물의 근원은 태극 太極 이요, 태극 太極 의 근원은 무극 無極 이요, 무극 無極 의 근원은 무무극 無無極 이요, 또 그 이전의 무무무극 無無無極 인 식의 무한한 후퇴를 계속한 아무것도 설명은 안된다.

따라서 인간관계는 우리가 보는 뚜렷한 사실인데, 그것을 설명하는 길은 오직 그 이상 원인이 안되는 제일원인 First Cause 밖에 있을 수가 없다. 이 제 1 원인을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고 토마스는 말한다.

3) 우연의 이론 자연을 살펴 볼 때에 우연이란 것도 틀림없이 존재하는 사실이다. 어떤 건널목에서 열차와 트럭 충돌사고가 났다. 많은 사상자가 났다. 그런데 그 중에 하필 A씨가 기었을까? 그날 그 차를 안탔더라면, 그 때 그 트럭이 그곳에 안 왔더러면, 그 건널목에 그 때 간수가 있었더라면, 그런 끔찍한 사고는 피할 수 있었고, 또 그 사고가 났더라도 A씨만은 안 다칠 수도 있었는데 왜 다쳤을까? 왜 이런 우연한 일이 밤낮 사실로 나타날까? 그것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기정사실인가? 우리는 무한정한 후퇴를 계속해서 우연의 연속으로 그것을 설명할 것인가? 둘 다 아니다. 그렇다면 오직 무엇에 대해서도 우연이 아닌 필연적 존재 Necessary Being 만이 긍극에 존재해야 이 우연이란 현실이 설명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이다.

4) 완전도의 이론 만물에는 다 우열의 차이가 있다. 이것이 보다 낫고, 저것이 보다 못하고, 어떤 것은 덜 완전하고 어떤 것은 더 우수하고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완전 perfection 이란 관념 없이는 무의미한 것, 그런데 자연에는 완전한 것이란 없는 것. 그러면 그 설명은 필요 없는 것인가? 무한정한 후퇴로 그보다 낫고 또 그보다 낫고 한 것으로 설명될 것인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맨 처음에 「완전한 존재」 Perfect Being 가 있음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신이다.

5) 조화의 이론 자연에는 오묘한 조화의 솜씨가 엿보인다. 너무나 끔찍하게도 잘 설계된 조물주의 솜씨가 삼라만상에 가득 차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식물은 탄소를 마시고, 동물은 산소를 마시고, 모든 강물은 바다로 내려가고, 바닷물은 증발해서 비가 되고, 비는 떨어져 강물이 되고, 그래도 바닷물은 줄지도 불지도 않고 하는 식의 조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 이 모든 조화가 어쩌다 순전히 찬스 chance 로 그렇게 되었는가? 혹은 무한정한 후퇴로 그 적응도를 설명할 것인가? 다 안되는 이야기고, 궁극에 가서는 계획, 설계, 예정, 섭리 providence 없이는 이 수천만 가지의 조화를 설명할 길이 없다. 그 설계자를 우리는 조물주라고 부르고 신이라고 부른다고 토마스는 말한다. 토미스트 Thomist 니 토미즘 Thomism 이니 Neo-Thomism 이니 하는 사상체계가 오늘날까지도 끈덕지게 남아 있는 이유는, 역시 이 자연현상의 인식을 토대로 한 이성과 신앙의 합치점을 발견하려는 노력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피 한방울 안 나오는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조금도 센티멘탈한 감정주의 emotionalism 에 흐르지 않는 순수 이성의 세계에서 사물이 다루어지고 사색되었기 때문이다.

02
밑져야 본전인 유신
밑져야 본전인 유신

13세기 “신앙의 시대” Age of Faith 였기 때문에, 또한 성 토마스가 천사적 박사였기 때문에, 스콜라학적 논리로 신의 존재를 자신있게 증명할 수 있었으나, 17세기에 와서는 사정이 그리 단순하지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 Copernicus적 전환”은 천문계에서 뿐만 아니라 철학 인문계에서까지 나타났고, 프로테스탄트 Protestant 발생 이후 1세기 이상에 걸친 끔찍한 종교전쟁(1517~1645)을 치르고 난 후의 종교문제는 그리 단순한 것이 못 되었다. 여기서는 이 당시의 유명한 신앙가 「팡세」 pensées 의 저자 볼래즈 파스칼 Blaise Pascal 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하자. 파스칼은 1662년 39세로 죽은 유능한 청년으로 파리 문화인 사회에서 이름을 날리다, 별안간 회심해서 포르 롸얄 Port Royal 의 시토 수도원 Cistercian abbey 에서 금욕과 희생의 생활을 하면서 짧은 일생을 마친 「생각하는 갈대」였다. 그는 자연의 인식에서 이성을 통한 신의 존재 증명을 어떻게 생각했던가? 성 토마스만큼 열심한 가톨릭 수도사였던 파스칼은 토마스와 같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벌써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회의적인 시대에 그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이성에 대한 호소나 자연신학론이 이들의 의심과 거부와 무관심을 해소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들이 어리석고 눈이 어두워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이 오류 속에서 살기 때문, 즉 성경책 몇 줄 들추어 보고, 성직자에게 말 몇 마디 물어보고, 그러고서는 쓸 데 없이 시간을 낭비했다고 속단하는 그 친구들에게 무슨 이론이 통하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이론을 따지면 한이 없는 다른 이론이 나오기 마련인 것, 따라서 근본적으로 거부와 무관심의 선입견을 가진 사람과 이론을 맞대 봤자 그것은 이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이다. 그래서 파스칼은 감정에 호소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고 보았다. 그는 잔뜩 의심을 질머진 채 그 의심을 풀어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덮어놓고 종교란 굴레를 벗아 던지자는 시대조류 속에 휩쓸리는 문화인들의 불쌍한 “갈대”의 모습을 묘사하며, 신 존재 인식은 자연에서 이성의 빛으로 찾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비참 속에서, 허전한 영혼의 갈증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외친다.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 존재하는 티끌만도 못한 인간, 그러나 하루살이나 불개미에다 비해 볼 때 거인 같은 인간, 결국 문제 되는 것은 이 우주 속의 “너” 자신, 딴 남이 아닌 바로 “너”에 관한 문제, 그런데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불가사의한 존재이다. 진리는 우리의 포착 거리내에 있지 않고, 우리는 항상 만경창파에 일엽편주처럼 키도 없이 돛도 없이 표류하는 존재로서, 확실성과 안정성을 피안에 두고 이승에서 발버둥치고 살다 죽고 마는 존재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확실히 공통적인 것은 꼭 한가지. 그것은 다 행복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와 “낙역재기중 樂亦在其中”이라는 달관 없이 아무도 그 행복을 안 놓치게 붙잡은 사람도 없다. 영원한 복낙은 오직 신 가운데서만 발견되는 것. 여기서 유명한 파스칼의 내기의 이론이 나온다. 그는 말한다. 어차피 벽창호 같은 반대론자 하고는 말도 안될 것. 그러나 의심을 가지고 의심을 풀어 보려고 하는 자에게도 회의주의 scepticism 의 도랑이 가로막혀서, 신의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그 필요성과 그 존재의 이론적 근거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지지 않는다. 그러면 아주 간단히 생각해 보자. 신은 존재하든지 존재하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성으로는 그것을 알아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내기를 할 수 있다, 이것이 유명한 파스칼의 종교적 도박이다. 신이 있는 편에 걸든지 신이 없는 편에 걸든지 둘 중에 하나. 그런데 유신론 쪽에 걸었다가 신이 없다 하더라도 밑질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무신론 쪽에 걸었다가 만일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남이 차지하는 커다란 세계를 하나 완전히 잃어 버리는 것이 된다. 따라서 밑져야야 본전, 어차피 확실히 모를 바에야 유신론 편으로 내기를 거는 것이 안전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파스칼의 「팡세」란 책명은 「생각」이란 뜻이다. 정말 이것저것 마구 생각나는 대로 723개 항목의 생각을 늘어 놓은 것이 이 책이며, 두서는 없어도 분명히 천재였던 표가 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수록되어 있다.

03
기적은 존재할 수 없다.
기적은 존재할 수 없다.

자연신학에 대한 회의주의자 파스칼의 주장은 그래도 열심한 신앙가에게는 위안이 되는 회의였다. 그것은 그가 17세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8세기 소위 “이성의 시대” Age of Reason 가 다가오자 지적 풍토는 더 달라졌다. 자유사상가들이 날뛰고, 프랑스 혁명이 다가오고, 문화혁명 intellectual revolution 이 진행 중인 때의 자연신학은 만신창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성의 시대」는 말을 바꾸면 반항의 시대였고, 의심의 시대였고, 회의의 시대였다. 그리고 철학사상 회의주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아메리카가 독립하던 해에 65세로 죽은 영국의 데이비드 휴음 David Hume(1711~1776)이었다. 그의 대표작은 「인성론」 Treatise on Human Nature 과 「영국사」 History of England 이다. 그는 사실 사가로서도 그 당시는 인기가 높았었으나, 역시 후세에 남은 것은 지독한 회의주의자 skeptic, 따라서 실증주의의 선구자 휴음의 이름이다. 그는 자연신학론에다 철저한 의심을 품고 그 논리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든다. 신의 존재의 증명은 무엇인가? 첫째는 기적, 둘째는 조화, 셋째는 제 1 원인이다. 이 세가지 증거라는 것이 첫째 의심스럽고 둘째 그것이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아무런 증명도 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휴음이 말하고자 하는 그것은 무신론 주장도 무신론 변호도 아니며, 또한 모든 신앙을 무시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신학의 논거가 이성에 호소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 다시 말해서 전통적 자연신학의 진부가 의심스럽다는 것 뿐이다. 휴음의 의심은 먼저 기적 miracle 으로 간다.

기적이란 자연법칙을 무시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기적은 가끔 생긴다. 따라서 그 설명은 자연적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것, 반대로 초자연적인 신적인 현상으로 밖에는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적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신의 존재를 논증할 수는 없다는 것이 휴음의 입장이었으나, 그는 가끔 18세기적 과학 인식을 앞세우고, 자연법칙을 무시하는 기적의 존재를 자연법칙에 따를 것으로 전제하고 논증하고 있었다. 물론 기적이란 자연법칙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법칙(law of nature, 자연법 nature law과 구별해서) 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는 그 차원이 전연 틀린 이야기이다. 그 다음에는 조화의 이론을 부인한다. 자연질서의 완전한 조화기 우연으로 또는 맹목적인 물질적 힘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도 말한 바 있다. 휴음은 이 이론을 철저히 쳐부순다.

주물주란 개념은 우리가 눈으로 본 기계 제작가나 건축 설계자나 시계 조립가와 비교해서 나온 비유적인 말이다. 우주의 구조가 오묘하기 때문에, 마치 시계의 잔 부분품을 교묘히 주어 맞추는 시계 수리공과 같이 우주에도 만물을 만든 주인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물건에 대한 인간 조물주의 관념과 자연을 만든 자연의 창조자의 개념이 서로 비교될 수 있는 비유냐고 휴음은 말한다. 우리가 집을 보면 그 집을 지은 목수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주의 경우는 그것을 만든 것을 본 일이 없는데 같은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그저 불완전한 가상이고 추측이고 비유임 밖에는 우리는 조물주가 우주를 만드는 것을 본 일이 없는 이상 그 유추 analogy 로, 그래서 목수가 있는 것처럼 확실히 조물주도 있다고는 못한다고 휴음은 따진다. 그리고 거기다가 그 조물주의 인자니 자비니 하는 특성까지 붙여 주기는 더욱 어렵다고 그는 추궁한다.

이 세상의 죄악과 불행, 고통, 비참, 질병 등등은 모든 신의 항로가 다 파선되고 말 암초라고 휴음은 말한다. 왜 도대체 이승에 악과 불행이 존재하는가? 우연인가? 고의적인가? 혹은 타의적인가? 전지전능하시고 인자관대하신 신께서 왜 짓궂게 이런 재앙을 백성에 내리시는가? 여기서 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 가장 큰 밑천인 악 evil 의 문제를 그는 최대로 이용한다. 자연이 불완전하면 그 불완전한 이유, 인간의 자유의지 free will 와 신의 전지전능 사이의 우열 등은 밤낮 「악」의 문제를 놓고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휴음은 기적과 재앙을 들고 자연적 이성의 힘으로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 한 후, 마지막으로 원인에 관해서 왜 인과율에 대한 무한정한 후회‧‧‧無無無極‧‧‧無無無無極이면 안되고 제1원인이면 되느냐고 반문한다.

요컨대 철두철미한 회의주의의 입장에서 휴음은 자연신학의 성립을 완전히 의심했다.

04
진화론에 짓밟힌 신의 존재
진화론에 짓밟힌 신의 존재

18세기 “이성의 시대”는 19세기 과학만능의 시대로 옮아갔다. 1859년에는 똑같이 큰 영향을 준 책이 영구에서 두 권 나왔다. 하나는 찰스 다윈의 「존의 기원」 Origin of Species, 또 하나는 죤 스튜아트 밀의 「자유론」 On Liberty 이다. 두 책이 다 이때까지의 신 개념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다윈이즘 Darwinism 은 자연의 체계에 대한 종전의 관념을 일소함으로써 신의 존재가 전연 달라졌고, 자유주의 liberalism 는 사회에 대한 종전의 관념을 일소함으로써 또한 신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살피게 만들었다. 다윈의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신의 창조사업은 끝났고, 다윈이즘에 의한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자연도태가 「종의 기원」 따라서 자연의 기원이라고 믿고 한숨에 무신론으로 치닫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 철저한 자유주의자 J.S. Mill 은 토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가부의 자유를 들고 자연신학을 변화하기도 했으나, 그 신은 역시 자유주의에 제한된 신일뿐이었다. 그리고 자연과학적으로도 문제 투성인 이 다윈 철학이 그대로 과학만능의 조류를 타고 사회과학까지를 휩쓸어 갈 때에, 실증적 과학 이외의 모든 형이상학이 넘어지는 판국에서 자연신학인들 옛 모습대로 발 붙일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 변화된 진화론의 자연신학이 헉슬리 T.H.Huxley(1825~1895)의 「불가지론」 Agnosticism 이었다. 「불가지론」이란 인간은 초감각적인 것은 인식할 수 없다는 철학이나 종교의 한 견해를 말한다. 헉슬리는 다윈이즘의 열열한 지지자로 독일의 에른스트 핵켈 Ernst Häckel 과 같은 구실을 했으나, 핵켈보다는 냉정하게 철학적으로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현대 자연과학과 크리스찬 신앙은 일치될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해서 인간의 현재의 품위가 깎이는 것이 아니며, 종교 및 형이상학의 궁극적 문제는 우리들에게는 해결불능이라고 생각했다. 불가지론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만일에 내가 아는 것을 가지고 내가 믿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 내가 믿는다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다. 복음성경의 기록은 역사상이 있는 것으로 믿을 수 있는가? 진화론의 결론에서 알려진 자연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는 자연의 창조주를 믿을 수 있는가?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아는 바를 가지고, 아직도 자연의 길에 따라 어떤 행동이 옳다 그르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가? 그 대답을 해보라. 정말 알송달송해질 것이다. 이것이 불가지론의 골자이다. 헉슬리는 말한다. 내가 지적으로 성장했을 때에, 나는 내 자신이 유신론자인지 무신론자인지 범신론자 pantheist 인지 유물론자인지 관념논자인지 크리스찬인지 자유사상가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더 배우고 더 생각할수록 내 대답은 더 주저하게 되었고, 마침내 나는 그저 자유사상가임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며, 결국 나에게는 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뿐이라는 결론 밖에 안 남았다. 모두들 다 “아는 사람” gnostics 이며 무슨 –ist들만 모인 철학학회의 일원된 영광을 차지하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르는 사람” agnostic 의 칭호 밖에는 내게 붙일 것이 없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서 agnostic 이란 말이 나왔다. Agnosticism 이란 gnostics 들이 완전히 확실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판단을 보류 또는 거부하는 일반 원칙을 신조로 삼은 사상체계이다. 따라서 그것은 일종의 실증주의도 되고 또한 회의주의도 된다. 그래서 헉슬리는 휴음을 실증학의 시조라고 예찬한다. 그러기 때문에 불가지론과 성직주의 clericalism 사이에는 평화도 휴전도 없다. 왜냐하면 성직자들은 어떤 명제들을 안 믿는 것은 도덕적으로 죄악이라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확실성이 없는 이 세상에서 오직 독단과 교리를 확실한 것이라고 믿으라고 하니, 그들과 화해할 수 없는 것이 지적인 면보다도 도덕적인 면에서 더 중요하다고 헉슬리는 확신한다. 도덕적으로 그들은 죄를 짓고 있고, 나는 오히려 정직하다고 그는 말한다. 문제는 다윈이즘도 하나의 –ism 임을 잊고, 다른 것은 다 확실한데 진화론만 확실하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점이다. 「종의 기원」은 「성경」만큼 확실하기도 불확실하기도 하다.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도태가 종의 기원이 된다는 발생학 genetics 은 적어도 오늘날 유전학적으로는 치명상을 입은 부분이다. 그런데 헉슬리는 그것을 믿었다. 이것을 윌리엄 제임스(p.61)는 「믿고 싶은 의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불가지론이 자연신학을 타도할 만큼 강력한 것도 장구한 것도 못 되었음은 J.S. Mill의 종교론을 통해서도 알 수 있고, 뒤에 나온 제임스의 「믿고 싶은 의지」 Will to Belive 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05
신은 이미 죽었다.
신은 이미 죽었다.

다윈이즘은 헉슬리로 그치지 않았다. 다윈이즘은 더 무서운 아들을 니체 Friedrich Nietzache(1844~1900)란 이름으로 가졌었다. 니체는 분명히 세기말적 존재였다. 56세의 길지 않은 생애에서 말기 17년은 완전히 정신병자로 살았었다. 따라서 그의 사상도 건전할 수는 없었으나 독특할 수 있었고, 또 천재적 광채에 빛날 수는 있었다. 자연계는 생존경쟁뿐, 그리고 다 죽이고 적자만이 살아 남는「종의 기원」이 새 창조라면, 힘은 도덕이요, 약함은 죄악일 수 밖에 없고, 선은 이기는 것, 악은 지는 것, 그렇다면 크리스찬 신학은 근본적으로 그른 것이 아닌가? 볼태르에서 콩트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자유사상가들이 유명해진 비결은 다 크리스찬 이상을 따르지 않는데 있지 않았던가?

그러면 오늘에 와서 약자의 종교 크리스찬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생에 대한 의욕, 전투에 대한 의욕, 권력에 대한 의욕 will to power, 아니 「초인」에 대한 의욕, 따라서 영웅 숭배, 초인 숭배가 진정한 주인의 종교이지, 로마제국에 짓밟히던 노예들이 믿던 굴욕의 종교, 약자의 종교, 십자가에 매달려 군중의 조롱 속에 아무 말도 못하고 맥없이 죽어간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가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대드는 것이 니체였다. 따라서 “신은 죽었다! 모든 신은 이미 죽었다”고 외치는 니체에게는 성토마스도 파스칼도 자연신학도 안중에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음악가의 정신을 노래와 춤과 드라마의 신이었던 디오니수스와 정적인 여성적인 아폴로, 다시 말해서 남성적인 동적인 디오니수스와 정적인 아폴로의 조화를 찬미했다. “음악 없이는 인생은 mistake”라고 생각했던 소나타 sonata 작가 니체는 이래서 크리스찬 신앙에서 그리스 신화를 비약을 할지언정, 크리스찬이 될 수는 없었다. 그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Thus spake Zarathustra(1883)에서는 그의 “초인” Superman 신앙과 “반 그리스도인” Antichtist 의 모습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차라투스트라(페르샤의 Zoroaster의 변형)가 산에서 내려오다 숲 속에 숨어 살던 늙은 성인을 만나 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다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늙은 숲속의 성인이 아직도 신이 죽은 소식을 못 들었다니,” 하고 중얼거렸다. 모든 신들은 오래 전에 죽었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좋고 기쁜 종말이었다. 아직도 그런 거짓말이 나돌고도 있으나, 그들은 황혼 속에 죽지 못해 사는 수치를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옛날 그 옛날에 신들은 유쾌하게 웃고 웃다가 숨졌다. 그 때의 일은 한 신이 신답지 않은 말을 한 데서 시작됐다. 그 말은 “신은 오직 하나 뿐이다! 내 이전에 다른 신들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그러자 모든 신들이 폭소를 터뜨리고 의자를 흔들면서 소리질러 웃어댔다. “신다움이 여러 신이 있는 데서 안 나오고 신이 없는 데서 나와? 하하하하!” 귀를 가진 자 들을지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유쾌한 무신론이다. 니체는 권고한다. 동포들이여, 땅에 충실히 남아 있으라, 그리고 그대들에게 지상에서 떨어진 희망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알건 모르건 그들은 독약을 주는 자들이다. 그들은 당나귀의 모습에 따라 최대한으로 어리석게 이 세상을 만들어 놓은 그 당나귀에 향을 올리고 있는 자들이다. 모든 신들이 죽었으니 이제「초인」Suoerman 의 출현은 우리는 기대할 수 있다. 가장 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얼마나 고상한 것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니체는 또한 다윈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비스마르크의 동생이 되기에 꼭 알맞은 자격을 가졌었다. 신의 가치와 의미로 충만한 「생」 Leben 의 의의를 완전히 잘못 본 니체에게는, 크리스찬 생활은 다만 생의 소극적인 단념 또는 단죄 또는 도리로 해석되고 그래서「초인」이란 황금박쥐의 새 이상이 설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생」의 최후의 근거에는 로고스 logos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 Chaos 가 지배하고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악신으로서, 건강한 힘의 신으로서, 디오니수스가 그리스도에 대한 대치물로, 또는 그리스도를 조롱하기 위한 위장물로 등장시켜졌던 것이며, 이래서 1900년까지에는 그전 사람들이 감히 입밖에도 못 내던 “신은 죽었다” 소리가 정신병자인 천재 니체의 입을 통해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까지에 이르는 사상적 근저에는 물론 다윈이즘의 그릇된 적용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었음은 덧붙인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06
믿을 권리 믿고 싶은 의지
믿을 권리 믿고 싶은 의지

헉슬리는 자연신학을 버렸어도 신을 믿는 것에는 무관심했는데, 니체는 아주 하수인이 되어서 신을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신은 죽지 않았다 그러면 신의 존재를 이성적 동물인 인간이 무관심하게 바라 볼 수는 없는 것. 무엇인가 자연신학의 문제에 해답이 있어야겠다.

여기에 새로운 타협책을 모색한 사람이 실용주의 pragmatism 의 창설자요 아메리카 사상의 독립선언가인 윌리암 제임스 William James(1842~1910)였다. 아메리카는 1776년에 독립을 했어도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는 유럽의 시골띠기 노릇을 못 면했던 것이, 제임스가 1870년 하바드 대학에서 M.D. 학위를 따고 68세로 죽을 때까지 거기서 교수를 하는 동안, 처음으로 미국의 사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첫 출발은 그가 낸 「심리학 원리」(1890)에서였고, 여기서 그는 의학에서 철학으로 자리를 바꿨던 것이다. 제임스의 자연신학은 파스칼과 헉슬리의 비빔밥 같은 것이었다. 그가 쓴 「믿고 싶은 의지」 Will to Belive(1897),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1902),「실용주의」 Pragmatism(1970)는 말하자면 헉슬리의 Agnosticism 과 같은 출발점에서 나온 것이다. 헉슬리는 자기가 믿는 것을 논리적으로 정당화시키지 못하면 부도덕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제임스는 바로 이 점을 들고 나왔다. 헉슬리는 남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논리적으로 지성적으로 정당화하지 못하는 것을 안 버리려 하고 있지 않나! 이런 믿음, 이런 신념이 바로 「믿고 싶은 의지」인 것, 그리고 이러한 믿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고, 헉슬리가 말한 것처럼 도덕적으로 문책당할 이유는 없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나온 것이 실용주의자 제임스의 입장이었다. 본래 생리학자로 훈련을 받은 의학박사 제임스는 심리학에서 철학으로 옮겨 갔으나, 그는 본질적으로 도덕학자요 신학자였다. 착한 생활이 결국에 가서는 가장 깊고 가장 오랜 만족을 가져온다는 것을 확신하던 제임스는, 우주를 지탱하고, 정의와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쳐주는 위대한 “벗”의 필요를 열열히 느끼고 있던 사상가였기 때문에, 그의 많은 저작들은 거의 이런 노선에서 쓰여졌다. 제임스의 「믿고 싶은 의지」란, 말을 바꾸면 “믿을 권리”였다. 믿고 싶은 사람에게는 믿을 권리가 있는 것, 그것은 「불가지론」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 오히려 막는 것이 부도덕한 것이 아닐까?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그는 믿을 수 있고 없는 것에 대한 논의의 전제조건으로 가설과 선택에 대한 논의를 펴고, 회의주의자, 불가지론자, 주지주의자의 주장에 맞설 논리의 준비를 했다. 그는 말한다. 가설 hypothesis 도 여러 가지, 선택 option 도 여러 가지, 그런데 북극탐험을 가자는 초대를 받았다면 그 선택은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가장 중대한 강요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가장 중요한 강요된 선택은 도덕적 선택, 종교적 선택이다. 그것은 가능성이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것이며, 거기에는 회의주의가 혹은 중립이 끼여들 여지가 없다. 북극탐험에 참가하면 가는 것이고, 안하면 못가는 것이지, 가지도 않고 안가지도 않는 중립이란 내 마음 속의 망서림뿐이지 북극탐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럴 때의 회의주의의 입장은 뿔을 바로 잡기 위해서 소를 잡는 것과 같다. 과오의 기회를 피하기 위해서 진리를 잃어 버리는 모험을 하자는 것이 회의주의다. 모험은 다 마찬가지인데 밑지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 그러려면 차라리 파스칼의 도박이 훨씬 낫다. 제임스의 말을 빌면 “우리와 신과는 서로 거래할 것이 있다.” We and God have business each other. 신의 명령에 따르고 거역하고에 따라 우리도 그 일부분인 우주를 좋게도 나쁘게도 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회의주의나 불가지론은 잘못될까봐 겁내는 것이 진리일까봐 찾아 보는 것보다도 더 현명하고 더 착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착하고 선하고 하는 문제는 감성과 의지에 관한 문제이지 지성에 관한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우리가 무엇하나 확실성을 가지고 아는 것이 어디 있는가? 우리의 지성은 언제 누가 그렇게 불가 오류로 만들어 주었던가? 우리 가운데 진리가 파악되었다고 종이 울려 본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면 우리는 그 종이 울릴 때까지 아무런 판단도 하지 말고 점잖게 기다릴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제임스의 회의주의자에 대한 비판이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의심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믿지 말라는 신앙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할 수 없다. 그것은 과학이란 “비젼”이 삐뚤어진 것에 불과하다. 제임스는 단순히 객관적 세계에 목적이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신을 믿는다고 말했다. 믿을 권리 또는 믿고 싶은 의지, 그것은 감정의 세계의 것이며, 지성의 세계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제임스의 결론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신의 전지 omnisci-ence 니 전능 omnipotence 이니 하는 신학논쟁은 철학가의 질병에 불과하다고 침을 놓는다.

07
신앙과 종교
신앙과 종교

종교란 말은 서양에서 쓰는 religion 이란 말이 그 뜻을 잘 표현해 준다. 이 말은 Latin 어의 relegere 즉 중대한 사건에 대해서 숙고한다는 뜻을 가진 말의 명사형에서 온 것이다.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긴 하지만 종교의 본질적 내용은 항상 신 혹은 신들에 대한 두려워함이다. 이것은 여러 제식을 통하여 하나의 정신행위로 나타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전 인류는 종교를 가져왔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본질적인 것에서 나온 것이며, 종교 발생의 전제는 인간이 종교적 소질을 가졌고 종교에 대한 수용력이 있다는 점에서이다. 이 소질이 인간의 내적 또는 외적 세계를 통해서 자각되는 것이나, 이럴때에 명상적인 인간에게는 보다 높은 힘이 전개된다. 또 양심의 내적 소리는 도덕률을 준 거룩한 최고 심판자에 대한 책임감을 인간 내부에 불러 일으켰다. 또한 생자필멸 生者必滅 제행무상 諸行無常의 달관은 팔정도 八正道를 찾는 커다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고, 질서있는 자연의 조화에 대한 고찰은 창조질서를 통한 조물주에의 길을 터 주기도 한다.

이런 것을 자연적 계시의 이해라고도 하나, 대중은 그런 방법으로는 불완전한 파악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럴 때에 가끔 종교에 대한 특별히 강한 소질을 타고 나온 사람들이 나타나 그 종교의 질을 높이고 순화시키는 구실을 하고 가는 적이 많다. 보살이니 나한 羅漢 이니 선지자니 예언가니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니들은 초자연적 계시를 받은 그 종교의 지도자 또는 교사들이다. 순수한 자연종교는 어떤 목적에 맞추어서는 가능하지만 인류 일반에는 존재하지 않고, 또 아무런 종교도 안 가진 민족은 이때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일이 없다. 그리고 종교에 대한 소질이 올바로 키워지지 않을 경우 미신과 종교적 무관심에 빠지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특히 이 경향이 심하고, 그 결과 문화적 미신가가 참 많다. 우리나라의 어떤 사회학자가 우리나라에 미신이 많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으나, 그도 또한 문화적 미신가에 불과했다. 그는 말하기를 첫째는 우리 생활구조가 자연의 힘에 방임하는 농업에 의존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나라 종교가 생사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적절한 해석을 못 내려 준 때문이고 셋째는 일반이 제멋대로 판단해 버리는 과학정신의 결핍 때문이고, 넷째는 우리나라 사회 풍조가 능력본위보다 자연적인데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이것이 우리나라 최고 지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다. 정말 철학에 대한 교양이 필요함을 잘 알려 준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소위 미신업자들이라는 직업을 성립시켜 주고 그 밥이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주로 교양있는 주부들, 특히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일부 남녀들이며, 미신업자들은 농촌에서는 벌이할 구멍도 없는 것이다.

미신은 농촌에서보다는 소시민사회 혹은 상공계급, 아니 때로는 대시민사회라고나 할까, 국회출마자도 일류학교 수험생을 가진 부모도 다 점을 치고, 더욱이 관상에 이르러서는 주로 거물급들만이 보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종교적이란 사실을 잊고, 과학의 이름으로 증명불가능한 것은 믿지 말라는 타부 taboo 를 내렸을 때에, 사람들은 다 「토정비결」을 보게 마련이다. 이런 점으로 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생활환경 속에 존재하는 “인간 대 초자연”의 관계를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앞서 자연신학에 관한 논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의 종교적 소질이란 그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영혼의 갈증에서 나오는 깊은 욕구이며, 따라서 인간의 사색, 의지, 감정, 행위, 모든 것이 결합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모든 것의 뒷받침이 될 수 있는 큰 “벗”에 대한 사변적 인식이요, 둘째로 그 힘에 대한 의지적 승인, 다시 말해서 그 힘에 대한 완전한 귀속이요, 셋째로 감정과 공경과 사랑과 신뢰와 복종을 가지고 그 힘을 지각하는 일이다. 따라서 종교란 논리적 윤리적 감정적 정신활동의 여러 면과 공존하는 정신활동의 최고의 형식이다. 종교는 반드시 모든 사람의 심령 중에 평등하게 작용하지는 않으며, 한 쪽에서는 강하게, 한 쪽에서는 약하게 작용하는 식으로 다양성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종교는 여러 가지 형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다형식과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종교는 개개의 인간에 생명의 유래・목적・행방을 가르친다. 그것은 전투의 인생에 대한 하나의 거점이고 엄호물이 된다. 그것은 도덕적 노력의 목표물이고 시발점이 된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 교양을 위한 최선의 수단이다. 또한 종교는 사회의 가장 강력한 기둥의 하나이며, 가장 끈질긴 유대의 하나이다. 진정한 종교는 사회에 따뜻한 맛을 주는 “미원”이고, 사회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 평화를 유지시켜 주는 최량의 교사이다. 종교 생활이 없는 곳에서는 생활은 위축되며, 생활을 위한 투쟁은 그 가치와 의미를 상실한다. 한동안 유행하던 실존주의 문화 운동도, 1969년 “신의 죽음” 신학이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것도, 니체적인 선전이 아니라 바로 이런 뜻에서였다.

08
희망이 있는 곳에 종교도 있다.
희망이 있는 곳에 종교도 있다.

“죽음의 신학”론은 Bible 의 신이 예수 그리스도에서 죽었으나, 신은 세속의 사람들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세상이 어둡고 추워지면 사람은 더욱 광명과 따뜻한 품안을 찾고 싶다. 오늘의 종교는 마치 동짓날의 태양과 같다. 가장 기울어지고 가장 짧고 가장 미지근하고 가장 쓸쓸하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일부터 햇발이 길어지고, 따뜻해지고, 또 머지 않아 만물이 부활할 희망이 있다. 따라서 신은 죽었던 것이 아니라 잠시 일식이 있었던 것이며, 새로운 「희망의 신학」 Theology of Hope(독일 신학자 Moltmann의 저서 이름)이 다시 신의 생명을 부활시키고 있다. 인생은 영원한 디렘마 속에서 산다. 물질주의에 황홀하다 보니, 첩이 생기고, 성 개방이 나타나고, 마침내는 성 박람회까지 개최되는 성문명 sex culture 시대가 왔다. 그러니 그만큼 범죄도 늘고 폭동도 심하고 인간성의 소모와 멸망이 눈에 띄게 커졌다. 신의 편을 들자니 황금과 sex 가 아깝고, Mammon 을 숭배하자니 더욱 고혈압과 노이로제의 약광고만 보게 되고, 날마다 환약을 먹어야 살게 되고, 밤마다 신경안정제를 옆에 두지 않으면 잠을 못 자게 되니 기묘한 디렘마다. 크리스찬들이 교회 가기를 그만 두더니, 선 禪 불교와 바하이교를 안 찾아가나, 마리후나의 환각제 속에서 지하 교회(?)를 안 만드나, go-go의 원숭이 춤 속에서 새로운 우상을 안 섬기나, 아무튼 말썽만 많다. 한 쪽에서는 사회혁명의 구호가 천지를 진동하고, 한쪽에서는 빈곤・질병・전쟁의 맹위가 세계 인구를 참화의 구렁으로 몰아넣고, 한 쪽에서는 물질적 근대화와 공업단지가 대기와 하천을 오염 속으로 몰아넣고, 한 쪽에서는 공해 때문에 70년대 말까지는 세계가 끝장이라는 종말론이 나돌고 하니, 역시 백과전서가 책장 속에 갇혀 있어서는 안되겠고, 길거리로 걸어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겠다. 그래서 새로 되어진 이야기도 많다.

1962년에 교황 요한ⅩⅩⅢ세는 제2차 바티칸 공회의 Vatican Council 를 열고, 1964년에 교황 바울로 Ⅵ세는 성지 참배를 가서 오토독스 Orthodox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Athenagoras 와 포옹을 함으로써 십자군 개시 41년 전부터 갈렸던 (1054) 동・서 로마교회의 분리에 화해의 길을 텄고, 1965년 콕스 Harvey Cox 는 「세속 도시」 The Secular City 를 써서 종교 사상을 세속화했고, 1966년 플렛처 Joseph Fletcher 는 「상황 윤리」 Situation Ethics 를 써서 새 도덕론을 주장했고, 1969년 브라텐 Carl Braaten 은 「신의 장래」 The Future of God 를 써서 “우리 크리스찬들로서는 혁명의 신학이 절대로 필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 없이는 우리는 20세기의 남은 부문을 완전히 무위 속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종교・혁명・미래」 Religion, Revolution, and the Future 란 책도 낸 몰트만은 “크리스찬 신앙이란 처음부터 전 세계의 미래에 관한 그리스도의 약속이 주제이다. 크리스찬 신학에는 문제는 하나뿐, 즉 미래의 문제뿐이다”라고 말한 「희망의 신학」에 뒤이어, “교회는 기억 위에 산다. 희망의 세계 위에 산다”고 했다. 인생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Where there is life, there is hope. 희망이 있는 곳에 종교가 있다. Where there is hope, there is religion. 우주 안의 초월이란 오직 인간의 희망뿐이다. 희망이 절망일 때 사람들은 모조리 자살할 수밖에 없다. 생을 이어나가는 것은 희망이요, 희망은 그 자체가 믿음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말한다. 인간의 미래에 그렇게 많은 꿈을 안겨 주는 것은 인간의 진화적 가능성의 무한대를 내포하고 있음에서라는 modernist의 생각은 그른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죽음과 부활과 영생의 가르침과 믿음의 소산이다.

십자가 자체가 미래의 희망에 대한 심볼이며, 절망자들에 대한 희망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현대 신학의 급진파들은 이 「희망의 신학」을 믿고 나가면서 인생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그것은 하나의 사회혁명을 찾는 것과 같다. 희망은 자연히 혁명으로 이끈다. 정화와 순경과 도의와 정의를 위한, 사회양심의 형성을 위한 혁명이 종교의 미래일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그래서 종교는 끝내 되살아난다고 주장한다. 물론 교회의 제도는 많이 바뀔 것이다. 카톨릭 교회는 신부 독신제를 미구에 의무제로 하지않을 것이요, 교회는 철저히 민주화될 것이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은 없어질 것이요, 여자 성직자도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도 점점 교회통합운동 Ecumenism 에 열을 낼 것이요, 그러면서도 더 적은 sect 로 교회가 무수히 분립될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직업을 가진 성직자들이 늘어날 것이요, 또 점점 물질적 풍성에 허덕이는 개인들의 영적 지도에 큰 길잡이 노릇을 할 것이다. 거만하고 도도했던 고도 기술사회가 벌써, 그 거대한 진보의 우상과 암담한 비참의 어둠 속에서 인간을 재발견하고, 적어도 자기가 자기 이웃에 대해서 어떤 종류의 설교자 노릇, 선교사 노릇, 성직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따라서 신은 아직은 죽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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